SK 박종훈(24)은 국내에서 몇 없는 정통 잠수함 투수다. 정통 잠수함이 사라지는 추세라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폼을 제대로 이해하는 조언자를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 그런 박종훈에게 박정현(46)이라는 귀중한 멘토가 떴다. 박종훈의 요청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온 박정현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가는 후배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건넸다.
박종훈은 15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릴 두산과의 경기를 앞두고 자신이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박정현을 만났다. 같은 잠수함 투수로서 물어볼 것이 많았던 박종훈의 사연을 ‘일간스포츠’가 보도했고, 이 보도를 본 박정현이 구단에 연락을 해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잠수함 대선배이자 인천 야구의 대선배이기도 한 박정현에게 박종훈은 그간 궁금했던 질문을 한꺼번에 털어놓기 시작했다.
박정현은 프로야구 팬들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한 시대를 풍미한 잠수함 투수였다. 1988년 태평양에서 1군에 데뷔, 이듬해였던 1989년 38경기에서 19승10패2세이브 평균자책점 2.15를 기록하며 당당히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잠수함이지만 역동적인 폼으로 타자들을 쓰러뜨렸던 호쾌한 이미지의 박정현은 2000년 SK에서 은퇴할 때까지 통산 253경기에서 65승54패21세이브 평균자책점 3.45를 기록했다.

“2000년 은퇴 이후 덕아웃에 들어오기는 처음이다. 15년 만의 일”이라고 웃어 보인 박정현은 박종훈을 처음 보자마자 “왜 그렇게 힘들게 던지느냐”라고 농담을 건넸다. 잠수함 투수는 투구폼상 허리와 무릎을 많이 쓸 수 없으며 제구를 잡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많은 힘을 써야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선수 생명이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정현의 이야기에는 농담과 함께 자신과 같이 힘든 길을 선택한 후배에 대한 애정이 묻어 있었다.
만남을 고대했던 박종훈은 질문을 퍼부었다. 박종훈은 어떤 계기로 잠수함 투수가 됐는지, 어떤 부분을 중점으로 두고 훈련을 했는지, 훈련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했는지, 구종은 어떻게 선택을 했는지 등에 대해 꼼꼼하게 물었다. 이에 박정현은 “사실 많이 힘든 투구폼이다. 무릎 부상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라고 하면서도 “그래서 앞근육 운동보다는 뒷근육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 허리와 엉덩이 쪽도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뒤가 잡히고 릴리스포인트를 좀 더 앞으로 끌고 나올 수 있다”고 생생한 경험담을 전했다.
스스로도 부상을 당했던 전력이 있는 박정현은 “박종훈은 나보다 더 밑에서 던지는 유형이다. 때문에 하체가 튼튼해야 한다. 그래야 제구도 잡힐 수 있다”라고 충고했다. “팀에 코치들도 많이 계신데 내가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기가 그렇다”라고 자세를 낮춘 박정현은 그래도 “공을 밀고 나가야 각도 더 생기고 날리는 현상도 방지할 수 있다. 궤적도 좋아진다”라면서 더 발전하는 후배가 되길 바랐다.
하체와 허리 운동에 대한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한 박정현은 “조웅천 코치가 항상 운동을 열심히 하고 성실했으니 도움을 받으면 될 것이다”라면서 “우리 때는 팀마다 잠수함이 1~2명씩 있었지만 지금은 빠른 공을 던지는 사이드암이 대세다. 지금은 완전한 언더핸드가 드문데 박종훈이 잘 던지고 오래 운동을 해야 앞으로도 이런 유형의 투수가 나올 것”이라고 선전을 기원했다. 자신과 같은 고민을 공유한 선배의 말을 스펀지처럼 쑥쑥 빨아드린 박종훈은 15일 경기 시구 전까지도 궁금한 점을 물어보며 따라다녔다. 신구 잠수함들의 대화에서 또 다른 핵잠수함이 탄생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