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에서 2000구를 던지는 투수가 올해는 나올 수 있을까. 144경기 체제로 자연히 불펜 투수들의 누적 투구수도 많아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올해는 그 해당자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높아지고 있다. 2000구를 향해 가고 있는 투수들도 보인다.
지금껏 보통 선발투수들은 한 시즌을 꾸준히 소화할 경우 25~27경기 정도를 소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경기당 100개 정도를 기준으로 하면 2500~3000개 정도를 던진다는 의미가 된다. 캠프 때 선발 투수들이 “3000구를 던질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든다”라는 것도 이와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들은 보통 최소 4일, 많으면 5~6일을 쉬는 선발투수들이다. 몸을 푸는 데 투구수가 더 소모되는 불펜투수들과는 사정이 다르다.
실제 불펜투수들은 2000구 이상을 던진 경우가 드물다. 투수 분업화가 확고하지 않았던 20세기에는 그런 투수들이 적지 않게 있었지만 21세기 들어서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전체 경기 중 90% 이상 불펜에서 나온 전문 불펜투수로서 2000구 이상을 던진 투수는 2002년 노장진(삼성, 2214구)과 이동현(LG, 2049구) 이후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

불펜의 중요성이 크게 늘어나 2007년 이후, 불펜에서 던진 투구수만 보면 2009년 이승호(당시 SK, 현 NC)가 최고였다. 이승호는 당시 전체 68경기 중 67경기를 불펜에서 나섰는데 그 67경기의 투구수는 총 1880개였다. 2위는 2010년 정우람(SK)으로 75경기에서 1726개를 던졌다. 3위는 2007년 임태훈(당시 두산)으로 1705개였다. 2007년 이후 한 시즌 불펜에서만 1700개 이상의 공을 던진 선수는 이 세 명이 전부다.
그나마 불펜 투수들의 한 시즌 투구수는 서서히 줄어드는 추세다. 2011년에는 이보근(넥센)이 56경기에서 1515개, 2012년에는 박희수(SK)가 65경기에서 1237개, 2013년에는 이동현(LG)이 64경기에서 1260개, 그리고 지난해에는 전유수(SK)가 67경기에서 1505개의 공을 던졌다. 지난해 불펜에서만 1000구 이상을 던진 투수는 총 15명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아직 102~107경기를 소화한 현재 1000구 이상이 8명, 900구 이상이 15명에 달한다. 128경기 환산 기준으로 1000구 이상을 던진 투수는 23명이다. 물론 이는 시즌 막판 체력적인 안배가 있을 수 있고 얼마나 경기에 나설지는 미리 짐작할 수 없어 잠정 추정치 정도다. 하지만 확실히 지난해에 비해 불펜 투수들의 투구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불펜 투구수/선발 투구수는 1.21이었지만 올해는 1.57로 뛰었다. 이 정도면 유의미한 변화라고 봐야 한다.
가장 많이 던진 투수는 올 시즌 ‘투혼의 아이콘’으로 팬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있는 권혁(한화)이다. 권혁은 15일까지 62경기에서 92이닝을 던지며 총 1657구를 던졌다. 단순하게 계산해 128경기 기준으로 딱 2000구다. 문제는 올 시즌은 128경기로 끝나지 않고 144경기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추세라면 불펜 2000구 투수의 등장은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역시 단순히 계산하면 144경기 환산 2251구다. 물론 체력적인 문제로 시즌 막판에는 투구수가 줄어들 수는 있으나 21세기 불펜 최다 투구 가능성도 남아 있다고 봐야 한다.
또 한 명의 후보는 권혁과 짝을 이루는 박정진(한화)으로 15일까지 딱 1500구를 던졌다. 역시 2037구 페이스다. 다만 그 아래로 2000구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불펜 투구수 3위인 최금강(NC)은 1225구를 던졌고 4위 홍성민(롯데)은 1187구, 5위 조상우(넥센)는 1143구를 던졌다. 5명이 1100구 이상을 던진 선수들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불펜에서 많은 공을 던진 투수들의 이듬해 시즌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던 전례가 꽤 있기 때문이다. 2002년 63경기에서 평균자책점 2.54를 기록했고 노장진은 2003년 평균자책점이 4.12로 뛰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긴 했지만 전성기 기량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2002년 78경기에 나갔던 이동현(평균자책점 2.67)도 2003년 33경기에서 평균자책점 4.05로 성적이 떨어지는 곡선을 그렸다. 그 후 수술을 받았다.
이승호는 2010년과 2011년 성적을 잘 유지했다. 2010년 65경기, 2011년 51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2009년 106이닝을 찍은 뒤 그 후 소화이닝은 계속 떨어졌다. FA 이적 후에는 4년 동안 2승을 거두는 데 그치고 있다. 신인으로 2007년 1705개, 2008년 1493개의 공을 던졌던 임태훈은 그 후 고질적인 허리 부상에 시달리다 결국 최근 임의탈퇴됐다. 정우람과 같은 예외 케이스도 있지만 오늘과 내일을 모두 봐야 하는 사령탑들의 머리가 아픈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나머지 팀들도 모두 가지고 있는 고민이라고 할 만하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