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투수가 리그 최다패? KBO리그 사상 첫 불명예 기록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한화의 수호신 권혁(32)이 리그 최다 10패를 당한 것이다. 선발로 던지지 않은 순수 구원투수로는 최초로 최다패를 뒤집어쓰게 생겼다.
권혁은 16일 포항 삼성전에서 4-2로 리드한 8회 1사 1·2루에서 구원등판했다. 그러나 안타와 볼넷을 2개씩 허용하며 2실점, 한화의 5-6 역전패와 함께 구원패를 안았다. 시즌 10패(9승)째를 당한 권혁은 함께 9패를 기록하고 있던 LG 헨리 소사, kt 크리스 옥스프링을 제치면서 최다패 단독 1위가 됐다.
역대 KBO리그에서 구원투수가 시즌 최다패를 기록한 적은 없었다. 2003년 롯데 임경완이 14패를 당했지만 그해 선발로 6경기를 던진 기록이 있다. 권혁은 올해 63경기 모두 구원으로 나온 '순수 구원'이다. 선발을 겸하는 스윙맨이 아니라는 점에서 권혁의 최다패는 지금껏 전혀 볼 수가 없었던 기현상이다.

권혁은 3~4월 15경기에서는 1패밖에 없었다. 그러나 5월 14경기에서 3패를 당하더니 6월 14경기 2패, 7월 12경기 2패, 8월 8경기 2패로 최근 3개월 연속 2패씩 패전의 멍에를 안았다. 삼성 시절이었던 2009년 기록한 7패를 넘어 개인 최다패를 이어가고 있다. 자칫 패수가 더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권혁에게 10패를 탓할 수 없다. 올 시즌 권혁은 리그 구원투수 최다 92⅔이닝을 던졌다. 63경기는 리그 공동 2위. 2012년 64경기, 2009년 80⅔이닝은 이미 넘어섰다. 이틀 연투가 10번, 3일 연투가 8번으로 밥 먹듯 마운드에 올랐다. 전반기 평균자책점 4.01로 버텼지만 후반기 6.61로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다. 이젠 지칠 수밖에 없는 몸이다.
권혁은 홀드·세이브 상황뿐만 아니라 지고 있거나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까지 가리지 않고 등판했다. 3점차 열세에서 6번으로 가장 많이 나온 가운데 1점차 열세 4번, 2점차 열세 3번에 4점차 열세에도 1번 나왔다. 4점차 리드 상황에도 5번 등판했으며 7점차 리드 3번, 6점차 리드 2번, 5점차·8점차 리드에 1번씩 구원등판했다. 26경기가 홀드·세이브와 무관했다.
권혁이 당한 10번의 패전 중에서 5패가 이틀 연속 던진 경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 중 3경기가 전날 2이닝 이상 소화한 뒤 연투를 하다 무너졌다. 나머지 1경기 중에는 1⅔이닝도 있었다. 직구 위주로 정면 승부하는 권혁에게 있어 체력은 투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연투 후유증'이 패전에서 나타났다.
한화 김성근 감독은 "어느 팀 투수든지 봄에는 좋아도 7~8월에는 가라앉게 되어있다"고 말했다. 투수가 시즌 내내 지치지 않고 꾸준함을 유지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김 감독도 잘 알고 있다. 김 감독은 5월부터 "불펜투수들이 지칠 때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름에 고비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불펜에 마땅한 대체자원이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권혁은 10패를 쌓았다. 한화의 슬픈 자화상이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