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은 신기루였나.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말이 있다. 일에는 때가 있고, 때를 놓치면 이루기 힘들다는 뜻이다. 프로스포츠도 그렇다. 매년 우승전력을 갖추는 팀은 없다. 통합 5연패를 노리는 삼성 라이온즈도 첫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루기까지는 20년이 필요했다. 천하의 뉴욕 양키스도 10년 넘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암흑기가 두 차례나 있었다.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는 게 프로스포츠다.
LG 트윈스는 가장 긴 암흑기를 거친 팀이다. 2002시즌 한국시리즈 진출 이후 2012시즌까지 10년 동안 루징팀이었다. 가을잔치를 멀리서 구경만 해왔다. 수차례 감독 코칭스태프 프런트가 물갈이 됐지만, 뾰족한 해답은 없었다. 선수단 내부갈등은 극에 달했고, 그라운드 안팎에선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긴 암흑기를 보냈기에, 지난 2년은 LG 선수단과 팬들에게 더없이 강렬했다. LG는 2013시즌 74승 54패로 정규시즌 2위에 올랐다. 2014시즌에는 감독 자진사퇴란 악재 속에서도 꼴찌부터 4위까지 치고나갔다. 시즌 중반 승패마진 마이너스 16을 찍었던 팀이 포스트시즌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승이 모자라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지는 못했으나, 암흑기가 지나고 전성기가 오는 듯했다. 1990년대 잠실벌에 강하게 불었던 신바람이 재현될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LG의 2015시즌은 이미 끝났다. 시즌 종료까지 한 달이 넘게 남았으나, LG는 현재보다는 미래를 바라봐야하는 처지다. 지난 19일까지 시즌 전적 47승 62패 1무. 냉정히 이야기하면,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은 물 건너갔다. 가을잔치는 또다시 남의 일이 됐다.
전성기가 이어지지 못한 원인은 많다. 시즌에 앞서 감독이 구상한 것들 대부분이 실패했다. 시무식에서 내세운 목표부터 잘못됐다. 기대를 모았던 신예선수들의 성장은 이뤄지지 않았고, 주축선수들의 기량은 하락했다. 영순위 과제였던 신구조화는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됐다. 이대로라면 프랜차이즈 최초 9위가 된다.
사실 LG는 지난 2년 동안에도 우승전력은 아니었다. LG의 장점은 두 자릿수 승이 가능한 토종 선발투수 둘, 두터운 불펜진, 그리고 정교한 베테랑 타자들이었다. 다른 상위권 팀과 비교하면, 파워, 스피드, 수비에서 부족했고, 선수층도 두텁지 않았다. 때문에 진정 우승을 노리기 위해선 매년 전력강화가 필요했다. 30대 중후반 선수들이 주축인 만큼, 이들이 정점에 있을 때 우승을 향한 가속페달을 밟아야만 했다. 물은 가득 찼다. 힘차게 노를 젓는 일만 남았었다.
그런데 겨울마다 LG의 행보는 너무 느긋했다. 2013년 겨울, 외부 FA 영입은 전무했고, 외국인선수 영입도 실망스러웠다. 대부분의 팀들이 100만 달러짜리 외국인선수를 영입하고 있는데 LG는 여유가 넘쳤다. 설상가상으로 1선발 에이스 외국인투수가 부상당한 채 스프링캠프에 합류했다가 곧바로 퇴출됐다. 별다른 반전도 없었다. 코리 리오단을 제외하면 다들 몸 값에 맞게 부진했다.
2014년 겨울을 다를 것 같았다. 2014시즌 초반 지옥 문턱까지 떨어졌다가 올라간 만큼, 이번에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줄 알았다. 당시 LG의 최우선 과제는 선발진 공백 메우기였다. 선발투수 두 명이 플레이오프 시리즈가 끝나자마자 수술대에 올랐고, 2015시즌 초반 출장이 불투명했다. 마침 FA 시장에는 딱 맞는 좌완 선발투수가 나왔고, 외국인선수 시장도 풍성했다. 스토브리그서 에이스급 투수 3명을 보강한다면, 나쁘지 않은 시즌 초반을 기대할만 했다. 여기에 뛰어난 외국인타자까지 데려오면 공격력 강화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겨울 스토브리그도 실패했다. 신속하지 못했고 자금력도 부족했다. 경쟁 구단이 외국인선수 시장에서 일사천리로 돈을 푸는 동안, LG는 갈팡질팡했다. FA 시장에선 시장가를 파악하지 못한 채 입만 벌렸다가 철수했다. 그렇다고 돈을 안 쓴 건 아니었다. 외국인선수에게는 쓸 만큼 썼다. 한나한과 100만 달러 보장, 루카스와 90만 달러 보장 계약을 체결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스프링캠프부터 아팠던 한나한은 5월부터 시즌을 시작했고, 32경기만 뛴 채 미국으로 돌아갔다. 루카스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자기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며 시즌 내내 극심한 기복을 보이고 있다. 둘 다 투자대비 효율 빵점. 왜 다른 구단은 이들을 영입하지 않았는지 알게 됐다.
물은 다 빠져나갔다. 노가 좋아도, 이제는 휘저을 바다가 없다. LG 베테랑 선수들은 144경기 체제에선 엄격한 컨디션 관리를 받아야한다. 내년에도 올해처럼 무분별하게 출장시키면, 베테랑 선수들의 반등을 기대하기 힘들다. 자랑이었던 불펜진도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마무리투수 자리를 놓고 깊게 고민해야 한다.
KBO리그에 체계적인 리빌딩은 없다. 5, 6년을 바라보고 바닥부터 다져올라가는 것은 메이저리그에나 있는 일이다. KBO리그에선 모든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을 목표로 달려든다. 그만큼 전력보강 요인이 많다. 외국인선수 세 자리를 새롭게 채워 넣을 수 있고, FA 시장에는 수준급 선수들이 쏟아져 나온다. 자금력만 풍부하다면, 겨울마다 다섯 자리를 보강할 수 있다.
이번에도 우왕좌왕하면 LG는 가시밭길을 걸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해쳐나가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쓰린 눈물을 흘린 후, 재도약까지 10년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뚜렷한 계획 하에 우직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가시밭길은 더 길고 험난해진다. / drjose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