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으로 모든 오해가 해소 될 것으로는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일희일비하지 않고,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위해 노력하겠다.”
현대자동차 곽진 부사장(국내영업본부장)이 22일 저녁 인천 송도 스트리트 서킷에서 벌어진 ‘무모한(?) 시연행사’에서 한 말이다. 마치 “이래도 안 믿을 테요?”라고 말하는 항변인 듯했다.
행사의 개요는 이렇다. 현대자동차는 이날 ‘쏘나타 30주년 기념 행사’의 하나로 ‘고객초청 자동차 영화 시사회’를 열었다. 그런데 이 행사에는 300여 명의 초청객들에게는 미리 알리지 않은, 깜짝 시연회가 준비 돼 있었다. 수출용 쏘나타와 내수용 소나타 2대를 구해와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 앞에서 정면 충돌 시험을 해 보인 것이다.

어떤 돌발 변수가 발생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다, 300여 명의 소비자와 수십 명의 미디어 관계자가 지켜 보는 가운데서, 리허설도 해 볼 수 없는 깜짝 이벤트를 열었다. 대단히 무모해 보이는 시연회다. 비용도 10억 원이나 들였다. 자신감도 충분히 뒷받침이 돼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다. 그만큼 ‘신뢰 회복’이 절박했기 때문이다.
▲ 어떻게 준비했나?
준비 과정을 보니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는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지독한 불신의 골에서 티끌만큼의 의심도 받지 않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묻어났다.

차대차(car to car) 충돌 시연에 쓰일 ‘쏘나타’를 고르는 작업에서부터 ‘현대차의 개입’은 배제됐다. 내수용 쏘나타 선택은 유명 자동차 블로거 ‘마대빠더’(이대환)가 나섰다. 이 씨는 현대자동차의 아산공장에 가서 파란색 ‘쏘나타 터보’를 무작위로 골랐다. 중간에 차가 바꿔치기(?) 당하는 상황을 대비해 흰색 페인트의 선명한 손도장으로 봉인을 했다. 운전석 문짝과 A필러 펜더, 동승석 문짝과 A필러 펜더, 보닛과 범퍼가 결합 되는 세 부위에 계약서의 간인처럼 이 씨의 손도장이 찍혔다. 앞 차창에는 ‘마대파더’라는 사인도 했다.

미국에서 팔리는 차를 사기 위해서는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김필수 교수가 로스앤젤레스로 날아갔다. 김 교수는 현대자동차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 돼 캘리포니아주 파운틴 밸리의 현대자동차 대리점에 전시 된 빨간색 ‘쏘나타 터보 스포트’를 골랐다. 마찬가지로 세 군데 손도장으로 봉인을 하고 앞 유리창에는 김 교수의 서명을 적었다.
▲ 왜 이런 무도한 충돌 테스트를?
행사의 진행을 맡은 김범수 아나운서는 “공개 된 야외에서, 소비자와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정면 충돌 테스트를 감행하는 것은 세계 최초가 아닐까 싶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누가 봐도 무모하리만큼 드문 이벤트다. 현대자동차에 대해 우리나라 소비자가 갖고 있는 불신의 골이 얼마나 깊은 지 알만한 대목이다. 어떠한 말과 자료를 들이대도 국내 소비자들은 더 이상 현대차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고 있다. 모든 것을 다 드러내놓고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서려있다.
▲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
현대자동차가 이번 공개 충돌 테스트를 통해 2가지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생산 되는 ‘쏘나타’와 수출용, 즉 미국에서 생산되는 ‘쏘나타’가 소재나 안전성 면에서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 주고 싶어 했다. 부품을 가져다가 성분 분석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를 소비자들이 믿으려 할지 의문이다. 결국 눈 앞에서 두 대의 차량을 충돌시켜 보이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었다. 동일한 안전성을 보인다면 ‘국내 역차별’ 논란은 종식시킬 수 있을 법했다.

또 한 가지는 ‘안전성’이다. 이날 공개 충돌 테스트에서는 마주 달리는 두 차를 정면으로 부딪치게 했다. 각 차량의 속도는 시속 56km. 법규상의 충돌 시험 조건은 콘크리트 고정벽을 시속 48km의 속도로 정면충돌 시킨다. 현대차는 더 가혹한 조건인 시속 56km의 속도에, 차대차(car to car) 충돌 방식을 택했다.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에서 벽에 충돌 하는 것과 같은 충격이 가해진다. 이런 충돌 조건에서도 운전석과 동승석에 앉은 더미(실험용 인체 모형. 운전석에는 남성, 동승석에는 여성용 더미를 앉혔다.)가 안전하게 보호 된다면 쏘나타의 ‘안전성’까지 뽐낼 수 있게 된다.
▲ 충돌 결과는?
대림대 김필수 교수는 자동차 정면 충돌 시 체크 할 포인트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A필러, 즉 앞 유리와 앞 차문 사이의 기둥이 운전석 쪽으로 밀렸는지 아닌지, 에어백은 잘 터졌는지, 충돌 후 탈출에 중요한 차문은 정상적으로 열리는 지 체크하면 차의 안전도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아산공장에서 생산 된 ‘쏘나타 터보’와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 된 ‘쏘나타 터보 스포트’는 정면 충돌 후 매우 흡사한 형태를 보였다. 엔진룸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찌그러지며 정면 충돌의 충격을 흡수했다.

그러나 두 차량 모두 A필러부터는 멀쩡했다. 에어백은 운전석, 동승석, 그리고 운전석 무릎까지 3개의 에어백이 모두 터져 있었다. 차문도 두 차량 모두 문제 없이 열렸다.
▲ 참회와 소통
충돌 시연 후 현대자동차 곽진 부사장은 간단한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이번 행사는 우리로서도 위험부담이 컸지만 진정성을 바탕으로 부담을 감수하면서 진행했다. 더미 손상이나 에어백, 차체도 보신대로 거의 차이 없지 않은가? 앞으로도 오해가 있으면 적극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곽 부사장은 시연회 도중 관람객을 대상으로 공개 된 영상에서는 참회의 말도 했다. “2분 남짓한 시연이지만 준비 과정에서 저희 스스로 많은 것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 동안 현대자동차가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노력과 바른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노력이 많이 부족했다. 이것으로 모든 오해가 해소 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할 것을 약속 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현대자동차의 다른 관계자는 “회사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3월 현대자동차 공식 블로그(http://blog.hyundai.com)에 ‘Talk H’라는 코너를 신설해 고객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듣고, 바로잡을 것을 바로잡아 서비스 현장에 반영하고 있다. 시동이 꺼진 싼타페와 투싼에서 ‘강아지 소리’가 난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즉각적으로 대응해 개선을 약속한 것이 좋은 예다. 안티 성향의 네티즌과도 ‘시승회’ 같은 스킨십 노력을 적극적으로 취하고 있다. 여론에 귀 기울이며 소통의 폭을 넓히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100c@osen.co.kr
[동영상] 고프로 히어로4 실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