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이 없는 프로 스포츠는 상상할 수 없다. 지금도 많은 프로 구단들이 팬들을 위해 팀 전력 및 구장 서비스에 막대한 금전을 투자하는 이유다. 그러나 그 팬이 구단이나 선수, 그리고 리그에 위협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간 비교적 이 문제에 관대했던 KBO 리그가 뭔가의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5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와 KIA와의 경기 도중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다. KIA가 결과적으로 결승점이 된 점수를 뽑은 이후인 연장 10회 2사 주자 없는 상황이었다. 타석에는 박찬호가 들어섰고 투수 박정배가 2구를 던진 뒤 갑자기 경기가 중단됐다. 이날 주심을 맡은 권영철 심판위원이 올해 신설된 포수 후면석(라이브존)을 향해 다가갔고 심판 조장인 김병주 심판위원이 퇴장을 명령했다.
이에 SK 구단 직원과 관리요원이 왔고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 이 관중은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SK 구단 관계자는 “볼 판정과 관련해 욕설이 있어 심판위원이 경기를 중단시킨 뒤 퇴장을 명령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달하면서 “2구째 상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판정에 풀만을 품고 욕설을 계속 하셨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 관중은 심판합의판정으로 KIA의 득점이 인정된 뒤 계속 뭔가를 소리치는 모습이 방송 중계 화면에 잡혔다. 주위의 만류에도 몇 차례 고함을 지르는 모습이 포착됐다. 심판위원들로서도 더 이상 방치할 경우 경기 진행이 어렵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장으로 난입하거나 오물을 투척하는 행위는 아니라 심판위원이나 선수들에게 물리적인 위협을 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욕설도 엄연한 언어폭력이다. 실제 입장권 뒷면에 인쇄되어 있는 입장 규정에도 “경기 및 타인에게 방해가 되는 행위를 할 경우에는 퇴장조치 및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 행위에는 음주소란 및 폭력행위, 욕설, 투척행위, 현수막 게청 등은 물론 애완동물 동반과 사업적 행위까지 포함된다.
다른 팬들의 지탄을 받는 하나의 소란으로 끝났지만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계속 발생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최근 각 구단들은 팬들에게 더 좋은 시야를 제공하기 위해 경기장을 개조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선수들의 플레이 공간이 상당 부분 관중석으로 잠식됐다. 선수들과 관중들의 거리가 계속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칭찬과 격려는 힘이 되지만 욕설이나 비난은 선수들의 플레이에 방해가 될 수밖에 없다.
잘 발각되지 않아서 그렇지 욕설이나 폭언이 없는 일은 아니다. 한 선수는 “팬들을 위해 좋은 자리를 마련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때로는 술을 한 잔 하셨는지 욕설의 정도가 지나치신 분들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한 외야수는 “원정에 갔을 때 상대 코너 쪽 외야로 나가면 경기 상황이나 분위기에 따라 어느 정도는 각오를 해야 할 때도 있다”라면서도 “하지만 우리가 팬들과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최대한 그런 소리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수밖에 없다”라고 하소연했다. 일부 극소수의 팬들이 삐뚤어진 팬심, 혹은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가 경기를 방해하고 있는 셈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경우도 있었다. 21세기 들어 팬들의 관람의식도 성숙해지며 그런 일은 줄어들었지만 오물이 날아들거나 술에 취해 경기장에 난입하는 팬들은 심심찮게 나오곤 했다. 팬들끼리 물리적인 충돌을 벌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최근에도 외야에서 오물과 폭언이 날아들어 관중과 선수가 얼굴을 붉히는 사건이 벌어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에 대한 제재다. 경기와 다른 관중들의 편안한 관람을 방해하는 팬들은 응당 그에 대한 처벌이 있어야 하지만 지금까지는 솜방망이에 불과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 관계자는 “조금 오래된 일이지만 술에 취해 경기장에 들어온 팬들을 안전요원들이 연행해 경찰에 넘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훈방 조치로 끝났다고 하더라”라면서 “그 팬이 다시 경기장에 멀쩡하게 나타나 구단 관계자들이 주시한 적도 있었다”라고 떠올렸다. 유유히 사라지거나, 혹은 퇴장 처분을 당해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경기장에 자유롭게 들어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백번 양보해 이 팬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쳐도, 경각심을 일으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처벌이다.
팬들에 대한 법적인 제재는 대단히 보수적이고 신중한 잣대에서 이뤄져야 함은 맞다. 하지만 그 잣대를 명확하게 세워두고 이를 어기는 팬들에게는 다른 제재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가진다. 그래야 성숙한 99%의 관중들과 선수들이 위협에서 자유로워진다. 팬들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 메이저리그(MLB)에서도 안전상 위협에는 자비가 없다. 영구적으로 경기장에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도 적잖이 발생한다.
훌리건들로 악명이 높은 유럽축구에서는 인터폴 공조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국제 경찰에서 이들의 신분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고 월드컵이나 유럽선수권이 열리는 기간에는 아예 입국조차 허락되지 않을 정도다. 또 다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함은 물론, 모방 심리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속셈도 있다.
물론 KBO 리그가 이 정도 단계까지 거론하기는 아직 이르다. 사법권과의 공조 체제를 구축하는 것에도 시간이 걸리고 구체적인 시행 과정에서도 시행착오는 불가피할 수 있다. 하지만 강력한 억제책이 나와야 한다는 데 이견을 달 팬들은 없다. 계도 기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면 당장 내년에라도 현재 추진 중인 SAFE 캠페인에 이런 내용을 추가시켜 심각성을 알리는 방안도 생각할 만하다. 폭력 행위 등 상식적인 부분은 물론 경기장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꼼꼼하게 홍보하며 팬들의 시각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