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전성기를 열어갈 것인가.
LG 트윈스 좌투수 봉중근(35)이 마무리투수 완장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양상문 감독은 지난 25일 창원 마산구장에서 “중근이는 이제 선발투수로 확정됐다. 마무리투수로 돌아올 일은 없다”고 봉중근이 앞으로 선발투수로 다시 커리어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엇붙여 양 감독은 “시즌 초반부터 두 달씩 기간을 두고 꾸준히 중근이에게 물어봤다. 지난주 금요일에 올 시즌 세 번째로 물어봤고, 중근이가 선발투수를 하고 싶다고 다시 답했다”며 “트레이너까지 함께 했던 자리였는데, 트레이닝 파트에서도 중근이가 4, 5일 쉬고 길게 등판하는 게 몸 상태에 더 적합하다고 했다. 그렇게 금요일 미팅을 통해 선발투수 복귀를 최종 확정지었다”고 전했다.

봉중근의 원래 자리는 선발투수였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봉중근은 2007시즌을 앞두고 한국으로 돌아왔고, LG 유니폼을 입었다. 2007시즌부터 2011시즌까지 5년 동안 110경기(선발 등판 107경기) 665이닝 39승 38패 평균자책점 3.57을 기록, LG의 1선발 에이스로 맹활약했다. 특히 2008시즌부터 2010시즌까지 세 시즌 연속 두 자릿수 승을 달성했고,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로도 자리했다.
그런데 봉중근은 2011시즌 중 팔꿈치 인대접합수술 판정을 받아 일찍이 시즌 아웃됐다. 그리고 2012시즌 불펜투수로 나서며 투구수를 늘려가다가 갑작스럽게 공석이 된 마무리투수를 맡았다. 당시 LG는 레다메스 리즈를 마무리투수로 내세웠으나, 리즈는 제구력 난조에 시달리며 두 달도 버티지 못했다. 결국 LG는 심사숙고 끝에 리즈 대신 봉중근을 마무리투수로 기용하기로 했다.
LG는 10년 암흑기 동안 마땅한 마무리투수가 없었다. 2002년 이상훈 이후 마무리투수 잔혹사를 겪을 만큼, 뒷문이 부실했다. 블론세이브가 속출했고, 역전패도 많았다. 외국인선수를 마무리투수로 기용해보기도 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2011시즌에는 트레이드를 통해 박병호를 내주고 송신영을 영입했는데, 이 역시 큰 효과는 없었다.
그러다가 봉중근이 2012시즌 마무리투수 잔혹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에이스의 위용을 마무리투수 자리에서도 보여줬다. 2013시즌과 2014시즌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도 봉중근을 비롯한 불펜진의 활약이 컸다. 암흑기 시절 LG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팀’이었다.
-2007시즌부터 2011시즌 LG 세이브 성공률: 67.1%(이 기간 블론세이브 리그 최다 71개)
-2012시즌부터 2014시즌 LG 세이브 성공률: 72.7%(이 기간 봉중근 세이브 성공률 90.4%)
봉중근이 아니었다면, LG의 암흑기는 더 길어졌을지도 모른다. 봉중근은 구속은 이전보다 떨어졌으나, 노련함과 정교함을 앞세워 LG의 뒷문을 든든히 지켰다. 9회 봉중근이 마운드에 오르기 전 울리는 사이렌 소리는 LG의 승리를 의미했다.
그러나 봉중근은 올 시즌 들어 최악의 부진에 빠졌다. 개막 2연전 두 번째 경기부터 블론세이브를 범하더니, 세이브 성공률 75%(세이브 15개·블론세이브 5개)로 고전했다. 결국 봉중근은 2014시즌부터 원했던 선발투수 복귀를 양상문 감독에게 꾸준히 요청, 지난 24일 양 감독의 승낙을 받고 이천으로 내려갔다.
봉중근은 앞으로 2군 경기를 통해 투구수를 늘려간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투구수와 이닝수가 선발투수에 적합해졌을 때 1군에서 선발 등판할 계획이다. 양 감독은 “당장 내년 시즌부터 선발투수로 나서는 것과, 올 시즌 4, 5경기라도 선발투수를 하는 것은 다르다고도 봤다”며 “일단 중근이는 2군에서 60, 70개를 던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점점 투구수를 늘려갈 것이다. 진행 상황을 봐야하기 때문에 언제 1군에서 선발 등판할 것이라고는 확정짓지 못하겠다. 어쨌든 올 시즌 내로는 중근이가 1군 무대에서 선발 등판 할 것이다”고 말했다.
봉중근이 선발투수로 다시 활약, 제 3의 전성기를 연다면, LG는 최대 고민거리였던 5선발투수를 확정짓는다. 양 감독은 선발투수로서 봉중근의 경쟁력을 두고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변화구 제구력만 갖고도 잘 하는 선발투수들이 있지 않나. 게다가 중근이는 수비와 견제도 매우 뛰어나다”고 기대했다.
봉중근 또한 “원래부터 나는 선발투수였다. 지금도 나는 충분히 한 경기에 길게 던질 수 있다”며 “사실 선발투수 자리가 그립기도 했다. 이닝이터가 되는 게 목표다. 매 경기 이닝을 최대한 많이 가져가고 퀄리티스타트를 하도록 노력할 것이다”고 목표까지 밝혔다.
물론 봉중근이 최전성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할 확률은 낮다. 어깨 상태도 당시보다는 많이 안 좋고, 구위도 떨어졌다. 그래도 봉중근은 기본적으로 타자를 잡을 줄 아는 투수고, 경기를 운용하는 데에도 능숙하다. 트레이닝 파트의 판단대로 하루 길게 던지는 게 2, 3일 연투보다 몸에 무리가 덜하다면, 5선발투수로서 수준급 활약을 펼칠 수 있다.
양 감독은 “사실 중근이가 내년 시즌을 풀로 소화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20경기에서 30경기 사이, 100이닝에서 120이닝 사이를 소화한다고 보고 있다. 그 이상을 해주면 좋겠지만, 일단 목표치는 이정도로 세우고 있다”며 내년 시즌 체력안배 속에서 봉중근을 선발투수로 쓰겠다고 밝혔다.
LG의 최대 강점은 토종 원투펀치다. 두 자릿수 승이 가능한 우규민과 류제국이 있기 때문에, 뛰어난 외국인투수와 5선발투수만 있으면, 매 경기 승리를 바라볼 수 있다. 수준급 토종 선발투수가 씨가 마른 상황인 만큼 상대적 우위를 점한다.
이제 LG의 과제는 분명해졌다. 봉중근이 선발투수로 완벽히 돌아오고, 봉중근을 대신할 마무리투수를 찾는 것이다. 둘 다 이뤄진다면, LG는 다시 마운드를 앞세워 승리를 쌓아갈 것이다. / drjose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