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네요".
목소리는 떨렸다. 그러나 승리를 이끌어낸 당당함은 살아 있었다. KIA 고영우가 프로 데뷔 처음으로 수훈선수 인터뷰를 했다. 지난 25일 문학 SK전에서 연장 10회초 과감한 주루플레이로 결승점을 뽑아냈다. 심판합의판정까지 이끌어낸 그의 발이 아니었으면 팀의 승리는 없었다. 데뷔 처음으로 수훈선수 인터뷰 무대에 오른 이유였다.
0-0으로 팽팽한 연장10회초 KIA 공격. 1사 후 이홍구가 중견수 키를 넘기는 3루타를 터뜨렸다. 지체없이 대타 백용환이 등장했고 대주자 고영우가 3루로 뛰어갔다. 백용환은 중견수 방면 뜬공을 쳤다. 대단히 짧은 타구였지만 3루 주자인 대주자 고영우가 과감하게 스타트를 끊었다.

고영우는 포수 이재원이 지키고 있는 홈을 파고들었지만 조동화의 송구는 정확했고 접전이 벌어졌다. 최초 판정은 아웃. 그러나 비디오 판독 결과 고영우의 발이 먼저 홈 베이스에 닿은 것으로 드러나 판정이 뒤집어졌다. KIA는 10회 마무리 윤석민을 올려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고영우의 발이 아니었으면 일어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고영우는 전문 백업요원이다. 타격은 23타수 2안타, 타율 8푼7리로 볼품이 없다. 그런데도 꾸준하게 1군 선수로 있다. 물론 2군에 내려간 적이 있지만 열흘을 채우면 다시 올라온다. 그는 타격에 방점이 있는 백업요원이 아니다. 현재 KIA에 고영우 만한 대수비, 대주자 요원이 드물기 때문이다. 53경기에 출전하고 있고 11득점에 3도루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고영우의 강점은 포수만 제외하고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경기에서 후반에 투입돼 내야수와 외야수를 누비기도 한다. 이런 멀티 수비수는 드물다. 덕택에 다른 대타를 기용하기가 편하다. 25일 경기에서도 대주자로 나섰다 10회말 우익수로 출전해 어려운 타구를 전력질주해 건져내는 호수비까지 보였다. 이날 결승점을 뽑아낸 것 처럼 대주자로도 효용성이 뛰어나다.
김기태 감독은 "안타는 적지만 백업요원으로 팀의 공헌도는 높다. 대주자도 되는데다 (포수를 제외하고) 내외야의 모든 포지션까지 소화하는데 이만한 선수가 어디있는가. 타격에서는 안타가 없어도 활용가치가 대단히 크다. 감독에게 선수기용의 폭을 넓여주는 친구이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고영우의 발견은 김기태 감독에게는 큰 수확이기도 하다. 고영우는 광주 동성고-성균관대 출신으로 지난 2013년 신인지명 5라운드 44번째로 유니폼을 입었다. 유격수 후보였고 2년 동안 50경기에 출전했지만 1군에서 자리를 잡기는 힘들었다. 타격이 워낙 부진했다.
그러나 작년 시즌을 끝나고 부임한 김기태 감독을 만나 외야수까지 병행하면서 전문 백업요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데뷔 이후 가장 오랜 기간 동안 1군 밥을 먹으며 팀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다. 묵묵히 음지에서 제몫을 하는 고영우의 존재는 올해 KIA가 잘나가는 이유가 되고 있다. /su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