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에서 득점을 내는 데 가장 재주가 없는 팀이 가을야구를 조준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KBO 리그 역사에서도 사례를 찾기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올 시즌 KIA의 이야기다. 팀 타율 꼴찌가 가을잔치에 진출하는 5번째 사례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KIA는 26일 현재 56승56패를 기록해 승률 5할과 5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 6위 한화와의 승차가 1경기라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지만 이제는 진지하게 5위를 노려볼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전력이 현격하게 약화된 KIA는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사실상 꼴찌’인 9위의 유력한 후보로 손꼽혔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완전히 반대 양상이다. 김기태 감독의 강인하고도 노련한 지도 속에 기대 이상의 힘을 내고 있다.
사실 타격 지표만 놓고 보면 포스트시즌에 어울리는 성적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한숨이 나오는 성적이다. KIA는 26일까지 팀 타율이 2할5푼4리에 머물러 있다. 리그 평균(.278)보다 2푼4리가 처지는 리그 최하위 성적이다. 9위 LG(.260)와의 격차도 적잖이 난다. 가진 전력을 고려하면 사실상 올 시즌은 팀 타율을 최하위로 마감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은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일발 장타력이 좋은 팀도 아니니, 타격으로 활로를 뚫어볼 구석이 마땅치 않다.

어느 정도는 예상됐던 일이다. 2013년 후 이용규, 2014년 후 이대형이 각각 이적 제도를 통해 팀을 떠났고 지난해를 마치고는 팀의 주전 선수들이었던 안치홍 김선빈도 입대를 결정했다. 그렇다고 새로 들어온 전력도 특출하지 않았다. 이에 그간 팬들에게 낯설었던 이름이 타순표를 대거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득점권 타율도 2할5푼6리로 리그 9위다. 어떻게 따지면 KIA의 이런 성적과 5위 수성은 미스터리하다고 볼 수 있다. 역사가 증명한다.
KBO 리그 역사상 팀 타율 최하위가 성적 최하위라는 비극으로 이어진 사례는 총 16번이다. 삼미(1982·1984), 롯데(1983·1997·2002·2004), 청보(1987), 두산(OB 포함, 1990·1996), 쌍방울(1992·1999), 태평양(1993), KIA(2000), LG(2005), 한화(2010), 넥센(2011)이 답답한 방망이에 울었다. 반대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사례는 단 4번밖에 없다.
첫 사례는 1994년 태평양이다. 태평양은 당시 팀 타율이 2할4푼4리로 리그 최하위였으나 정규시즌을 2위로 마감했고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다. 막강한 마운드도 있었지만 사실 OB(.246), 한화(.247), 쌍방울(.248)까지 타격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하다. 평균과는 1푼3리 차이가 났다.
그 후로는 한동안 사례가 없다가 2007년 삼성(.254)이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다만 평균과는 9리의 차이로 역시 당시 방망이는 상대적으로 작은 팀별 편차를 가졌다. 지난해 LG 또한 2할7푼9리로 팀 타율 최하위를 기록하고도 포스트시즌에 나갔다. 평균과는 1푼 차이가 났다.
나머지 하나의 사례가 역사적인데 그 기록을 KIA가 가지고 있다. KIA는 2009년 정규시즌 팀 타율이 2할6푼7리로 꼴찌였다. 하지만 마운드가 SK 다음으로 좋은 평균자책점(3.92)을 냈고 득점권 타율에서 2위, 대타성공률 3위, 그리고 김상현-최희섭으로 이어지는 가공할 만한 CK 장거리포를 앞세워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내달렸다. 정규시즌 팀 타율 꼴찌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사례로 당시는 평균과 8리 차이가 났다.
이런 사례를 보면 올해 KIA는 격이 다른 도전일 수 있다. 앞선 사례들은 평균과의 차이를 봤을 때 9리에서 1푼3리 정도의 차이였다. 그런데 지금 KIA는 무려 2푼4리의 차이가 난다. 전 사례보다는 타격이 압도적으로(?) 좋지 않다는 반증일 수 있다. 그럼에도 KIA가 포스트시즌에 도전하고 있다. 역시 마운드의 힘이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KIA는 26일까지 4.5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해 NC(4.27)에 이어 이 부문 리그 2위에 올라 있다. 선발 평균자책점은 4.52로 리그 3위, 불펜 평균자책점도 4.55로 리그 3위다. 양현종의 잔류와 윤석민의 복귀라는 호재가 있었지만 외국인 선수로 야심차게 영입했던 필립 험버의 호된 실패를 생각하면 이 또한 분명 기대를 웃도는 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마운드라는 ‘안전자산’이 버텨주는 가운데 선수들의 집중력, 그리고 벤치의 선택과 집중이 이런 좋은 성적을 만들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물론 앞으로 갈 길도 멀다. 윤석민과 에반 믹을 위시로 한 불펜 전력은 짜임새가 있다. 투수들은 더 좋아지는 듯한 인상과 기록을 남기고 있다. 다만 양현종, 조쉬 스틴슨, 임준혁을 제외한 선발 두 자리가 미지수다. 26일 경기에서는 홍건희가 역투를 펼치기도 했지만 아직 정해진 주인은 없다. 김병현 서재응 등 베테랑 선수들의 복귀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올 시즌 보여준 성과가 마땅치 않다. 결국 앞으로도 확실한 불펜 요원을 앞세운 승부수의 적중 여부가 KIA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