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건 제 스타일은 아닙니다”
8월 중순, 이명기(28, SK)는 하나의 질문에 한숨을 쉬며 이렇게 대답했다. 안타와 볼넷, 혹은 타율과 출루율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명기는 이제 리그를 대표하는 교타자 중 하나다. 구종과 코스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존안에 들어온 공이나 노림수에는 적극적으로 배트가 나가는 스타일이다. 천부적인 타격 재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해 83경기에서 타율 3할6푼8리를 기록한 이명기는 사실상 풀타임 첫 해인 올해는 타격 10위다. 팀 내에서는 단연 1위다.
그런데 8월 들어 조금씩 타격이 소극적으로 변하는 조짐이 보였다. 이명기의 8월 시작 타율은 3할3푼이었다. 볼넷보다는 쳐서 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선수답게 출루율은 3할6푼9리였다. 그런데 8월 19일 타율은 3할2푼5리로 5리가 떨어진 반면 출루율은 3할7푼9리로 1푼이 올라 있었다. 보통 출루율은 타율과 비례하기 마련. 그 이유는 볼넷의 증가에 있었다. 문제는 볼넷이 늘어나는 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명기는 “주위에서 리드오프치고는 출루율이 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털어놨다. 솔직히 이야기해 여론에 대한 의식이었다. 그러다보니 공을 좀 더 많이 보려고 하고, 때로는 볼넷을 마음에 두고 타석에 들어설 때도 있었다. 이는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타격감에 썩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를 테면 3B-1S에서 예전 같았으면 공격적으로 나갔을 것이, 출루를 염두에 두고 공 하나를 기다리는 과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좋은 공을 놓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미세한 버릇 하나에도 신경을 쓰는 선수가 자신이 평생 가져왔던 패턴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 일. 이명기의 고민도 여기서 시작됐다. 하지만 여론의 의견도 일리는 있었다. 리드오프는 일단 많이 살아나가면 나갈수록 팀에 보탬이 된다. 이런 딜레마에 한동안 빠져 있었던 이명기였다. 그런데 이제는 실마리를 풀어가는 듯 하다. 역시 자기 스타일을 바꾸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씩 상황에 대처하는 리드오프로서의 진화 과정을 겪고 있다.
이명기는 26일 인천 KIA전을 앞두고 “해답을 찾았는가”라는 질문에 “아직 잘 모르겠다”라고 웃었다. 그러나 기록은 이명기가 진화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7월 한 달 동안 안타 27개와 사사구 8개를 골랐던 이명기는, 8월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6일까지 안타 26개와 사사구 15개를 기록했다. 안타수는 비슷한데 사사구가 배로 늘었다. 8월 초에 비하면 타율은 4리, 출루율은 1푼8리가 올랐다.
이명기는 이에 대해 “최근에는 타격감이 조금 올라온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타격감이 괜찮을 때는 굳이 공을 기다릴 필요가 없이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는 것이다. 실제 이명기는 8월 15일 두산전부터 26일 KIA전까지 10경기 연속 안타를 때렸다. 그리고 5경기는 멀티히트였다. 이 기간 중 볼넷은 단 2개였다. 때려 나갈 수 있는데 굳이 기다릴 이유는 없다. 대신 8월 중순처럼 타격감이 좋지 않을 때는 좀 더 공을 본다는 심산이다. 그래도 기본은 ‘공격’에 무게를 두지만 이 기간에는 볼넷이 급격하게 많아졌다.
리드오프의 또 하나 덕목인 도루에서도 최근 가파르게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명기의 올 시즌 가장 큰 스트레스는 바로 도루였다. 시즌 전 “무조건 20도루를 하겠다”라고 다짐했지만 6월까지 도루가 7개에 그쳤다. 막상 뛰면 살 자신은 있는데 자꾸 견제에 걸려 횡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음이 급한 탓이었다. 자꾸 죽다 보니 소극적인 베이스러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7월에는 4개, 8월에는 5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어느덧 16도루를 기록하고 있다. 투수들과의 타이밍 싸움에서 점점 이겨나가고 있는 것이다. 도루가 단순히 발만 빠르다고 되는 것은 아닌데 이명기 또한 성장통을 겪으면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천부적인 타격에 출루율 향상, 도루 개수의 증가, 그리고 수비에서의 뚜렷한 향상까지 과시하고 있는 이명기가 서서히 완전체 리드오프의 대열로 향하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