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점이거나 뒤지고 있는 9회 2사 상황에서 주자의 거취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뛰다 죽으면 이닝이 끝나고 천금 같은 기회가 날아가기 때문이다. 대부분 타자들의 방망이만 바라보고 있기만 일쑤다. 이제 1군에서 12경기에 뛴 신인이라면 더 그렇다.
하지만 유서준(20, SK)은 그렇지 않았다. 능동적이었고 거침이 없었다. 지난 25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와 KIA전에서 0-0으로 맞선 9회 2사 상황이었다. 2사 후 브라운이 볼넷을 골라 나가자 SK 벤치에서는 발이 빠른 유서준을 대주자로 내보냈다. 물론 2루를 훔치라는 사인은 없었다. 나주환이 안타를 치면 최대한 더 많은 베이스를 가려는 평범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유서준은 과감하게 뛰었다. 막내의 단독 도루였다.
KIA도 유서준의 도루 시도 움직임을 읽고 있었다. 피치아웃이 들어갔다. 꼼짝 없이 죽는 판이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자신의 능력을 믿고 과감하게 스타트를 끊은 유서준은 송구가 약간 치우친 사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2루에 먼저 들어갔다. 한 번이라도 머뭇거렸다면 아웃이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나주환의 잘 맞은 타구가 3루 땅볼로 아웃돼 이 도루는 큰 빛을 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서준의 의도와는 별개로, 이 도루는 SK 선수단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법했다.

유서준은 26일 경기를 앞두고 “벤치의 사인은 없었다. 내가 생각하고 뛰었다”라고 말했다. 유서준은 올 시즌 퓨처스리그 63경기에서 무려 28개의 도루를 기록한 SK 내 최고 준족 중 하나다. 1군에 와서도 2번의 도루를 모두 실패 없이 성공시켰다. 아직도 아쉬운 기색이 남아 있었던 유서준은 “나가면 항상 뛰고 싶다. 자신감은 있었다”라고 떠올렸다.
일단 자신이 2루에 가면 단타 하나로 경기가 끝날 수 있었다. 짧은 안타에도 홈에 들어올 자신감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쟁취해냈다.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믿음, 그리고 쏟아지는 중압감을 버텨낸 자신감이 ‘안 될 상황’을 ‘되는 상황’으로 만든 것이다. 유서준의 도루는 그런 평범한 진리를 그라운드에 다시 아로새겼다.
우승후보로까지 평가받았지만 7위에 처진데다 5위 싸움마저 불리한 SK는 분위기가 처져 있다. 선수들끼리 “항상 좋은 말만 하자”라며 웃고 있지만 그 웃음 뒤에 그늘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 관계자는 “10개 구단 덕아웃 중 SK가 가장 조용하다. 절간에 들어온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다.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야구가 안 되다보니 활력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자연히 위축되고, 수동적으로 변하며, 결과에 조바심을 내게 된다. 이것이 악순환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리고 1군에 있는 선수들이라면 그 처방전도 모두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유서준의 도루처럼 능동적으로, 자신감 있게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지금은 “누군가 대신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가장 위험한 때다. 그라운드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SK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다. 물론 이는 선수들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