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투수들이 가장 마음 편한 날은 언제일까. 아마도 잘 던져서 선발승을 거둔 다음 날일 것이다. 1주일에 보통 하루 마운드에 올라가는데, 자기 몫을 다한 다음 날은 마음 편하게 운동을 할 수 있다. 보통 선발투수들은 등판 다음 날 가볍게 몸을 풀고 경기 중에는 더그아웃 앞에서 동료들을 위해 날아드는 공을 주워준다.
28일 사직구장에서 가장 마음편한 선수는 롯데 자이언츠 에이스 조쉬 린드블럼이었으리라. 린드블럼은 27일 경기에서 8이닝 3실점으로 시즌 11승을 따내며 제 몫을 다했다. 경기 다음 날 러닝훈련으로 몸을 푸는 린드블럼은 경기 전 말끔하게 면도를 하고 더그아웃에 등장했다. 아내(오리엘 린드블럼)가 수염기르는 걸 싫어한다며 투덜대면서 말이다.
편한 마음으로 더그아웃에 나타난 린드블럼은 갑자기 "내 한국 이름은 '판정중'"이라고 소개했다. '판정중'이라는 단어를 알아듣기는 쉽지 않았지만, 린드블럼은 "Replay"라는 말을 덧붙여서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밝혔다.

린드블럼에게 '왜 하필 그걸 한국 이름으로 삼았냐'고 물어보자 "그냥 그 단어가 마음에 들어서 그랬다"면서 자꾸 '판정중'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경기 중 사직구장 전광판에 '합의 판정중입니다'라는 단어를 보게 됐고, 단지 '판정중'이 마음에 들었다는 게 린드블럼의 주장이다. 린드블럼은 이미 한국에 올 때부터 기본적인 한글 읽는 법을 배웠고, 지금은 웬만한 한글은 소리내서 읽을 수 있다.
이미 롯데 동료들도 린드블럼을 '판정중'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주형광 투수코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린드블럼을 '정주이'라고 부른다는 후문. 본인 한국이름을 '판정중'이라고 선택했으니, 그 뜻을 존중해 '정중'이라는 이름을 경상도 억양으로 부르는 것이다.
마운드 위에서 린드블럼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자신의 임무에 집중하지만, 마운드에서 내려오면 유쾌한 청년으로 변한다. 그래서 팀 동료들도 린드블럼을 편하게 대하고 또 좋아한다. /cleanupp@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