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자해지' 세든, 퇴출 고비 넘긴 희망투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8.29 06: 09

SK에는 비상이 걸렸다. 기대를 걸고 영입한 크리스 세든(32, SK)이 전혀 기대에 못 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되도록 1군에서 버티길 바랐지만 계속 난타를 당하는 와중에 더 이상 ‘못 봐줄’ 상황까지 이르렀다. 구단 일각에서는 “생각을 다시 해봐야 한다”라는 말도 나왔다. 교체를 의미했다. 8월 초, 세든은 퇴출 직전까지 간 선수였다.
SK가 올 시즌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간판스타들의 부상 공백도 심했고, 주축 선수들이 여전히 자기 성적을 못 내고 있다. 벤치도 미스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딱 하나의 결정적인 상황을 뽑는다면 역시 트래비스 밴와트의 불운이었다. 복사뼈에 타구를 맞아 한 달을 쉬었던 밴와트는 7월 1일 인천 kt전에서 손목 위쪽에 다시 강습 타구를 맞으며 사실상의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SK는 밴와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밴와트는 지난해 대체선수로 입단해 9승을 쓸어 담았다. 초반에는 부진했지만 밴와트는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컨디션이 올라오는 스타일이다. 지난해 성적을 보지 않았느냐”라고 했다. 그리고 실제 밴와트는 부상을 당하기 전 7경기에서 한 경기를 빼놓으면 모두 3실점 이하 경기를 했다. 본격적으로 치고 나가는 듯 했다. 하지만 부상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첫 번째 부상이 밴와트의 컨디션 회복 그래프를 한 달이나 끊어놨다면, 두 번째 부상은 아예 그 그래프를 찢어 놨다.

이런 상황에서 세든은 밴와트가 ‘할 몫’을 대체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SK의 계산은 완전히 틀어질 수 있었다. 2013년 KBO 리그에서 다승왕(14승)에 오른 선수이니 기본은 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데려왔다. 세든도 은근한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엉망이었다. 차라리 다른 국내 선수들에게 선발 기회를 주는 것이 나을 정도로 내용이 형편없었다. 결국 2군행을 통보받았다.
구단은 긴장했다. 성적이 처져 있는 상황에서 세든이 반등하지 못하면 시즌이 어려워질 수 있었다. “새 외국인 선수를 포스트시즌에서 활용할 수 없다”는 핸디캡을 감수하고도 교체까지 고려했다. 그 정도로 상황이 급박했고 마지막 기회가 8월 18일 광주 KIA전이었다. 여기서도 나아진 모습이 없다면 칼을 휘두를 공산이 컸다. 하지만 2군에서 차분히 심신을 가다듬은 세든은 이 경기에서 가능성을 보여주며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세든은 투구폼이 무너진 상황이었다. 2013년에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이닝소화로 탈이 났다. 이는 2014년 밸런스 붕괴, 구속 저하로 이어졌다. 투구시 팔이 넘어오는 동작은 힘이 떨어지며 거칠어졌고, 하체마저 밸런스를 잡아주지 못하니 제구가 들쭉날쭉해졌다. 그런 세든은 2군에 있는 동안 2013년 한창 좋았을 때의 영상을 보며 폼을 가다듬었다. 당시 1군 투수코치이자 지금은 퓨처스팀(2군) 투수코치로 있는 조웅천 코치가 세든과 의기투합했다.
2군행 이후 퓨처스리그 첫 등판이었던 13일 함평 KIA 2군과의 경기에서 세든은 5이닝 5실점으로 부진했다. 그러나 세든은 내용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밸런스가 서서히 잡히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결국 1군에 돌아와 KIA전서 생명을 연장했다. 자신감을 찾자 내용은 더 좋아졌다. 23일 만만치 않은 타선을 보유한 NC전에서는 6이닝 3실점(2자책점)으로 잘 던졌다. 퇴출 이야기는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28일 잠실 LG전에서 자신의 첫 완봉승을 기록하며 팀에 기를 불어넣었다.
LG 타선이 약한 점도 있지만 세든의 구위 자체는 훌륭했다. 최고 143㎞의 빠른 공은 좌우 코너워크가 워낙 좋았다. 꽉 차는 공에 LG 타자들의 배트가 좀처럼 쉽게 나오지 못했다. 빠른 공 64개 중 45개가 스트라이크였다. 여기에 왼손 타자들을 상대로 도망가는 슬라이더가 바깥쪽 꽉 찬 코스에 들어가며 상대를 얼어붙게 했다. 맞혀 잡는 피칭으로 볼넷도 줄이고 투구수도 줄인 결과 완봉승에 이를 수 있었다. 2013년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한 판이었다.
사실 8월 초 SK 불펜이 완전히 붕괴 직전까지 갔던 것은 세든의 영향이 컸다. 세든은 7월 26일 넥센전에서 4이닝, 8월 1일 LG전 3이닝, 그리고 8월 7일 삼성전에서는 2이닝 소화에 그쳤다. 그 때마다 불펜 투수들이 세든이 남긴 이닝을 정리하느라 총동원됐다. 체력적으로 손실이 컸고 이는 붕괴 도미노로 이어졌다. “SK의 8월 추락은 세든의 부진이 발단이 됐다”라는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세든은 28일 지쳐 있었던 불펜 투수들에게 소중한 휴식을 주며 빚을 갚았다. 세든의 결자해지 속에, SK는 기분 좋은 3연승과 함께 5위 추격의 원동력을 얻었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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