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만 지겠다".
KIA는 지난 5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시즌 14차전에서 좌완 임기준과 깔끔한 계투책을 가동하고 오준혁의 투런포, 철벽수비까지 더해지며 4-0으로 승리했다. 올해 삼성과의 전적 8승6패를 기록하며 삼성전 승률 최저 5할을 확보했다. 지난 4년간의 일방적인 천적 관계를 청산한 것이다.
김기태 KIA 감독은 지난 3월 23일 2015 프로야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 참석해 "그동안 삼성에 너무 많이 졌다. 올해는 반만 지겠다"고 말했다. 미디어데이에서 특정팀을 상대로 시즌 공약을 내건 것은 이례적이었다. 김 감독이 선언적인 공약을 내민 이유는 있었다.

그동안 KIA는 삼성에게는 승리 헌납기나 마찬가지였다. 2011년 전반기 1위를 달리다 후반기 첫 상대로 맞이한 삼성에게 치명적인 3연패를 당하며 선두를 내준 이후부터 삼성만 만나면 기를 펴지 못했다. 그 해 전반기는 6승5패로 앞섰으나 후반기에 1승7패로 열세에 몰려 7승 12패를 기록했다.
2012년은 6승1무12패로 한걸음 더 밀리며 2연 연속 열세에 몰렸다. 급기야 2013년은 4승12패로 타작을 당했고 2014년도 똑같이 4승12패를 당했다. 결국 4년 동안 매년 12승씩을 삼성에게 건네주었다. 4년 삼성을 상대로 21승 1무 48패를 기록했다. 승률이 불과 3할4리였다. 이제는 '영호남 라이벌'이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웠고 3년 내내 4강 실패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됐다.
김기태 감독은 작년보다 전력이 나아지지 못한 채 2015시즌을 앞두고 덜컥 삼성과의 천적관계를 청산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 공약이 실천될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삼성은 최강이었고 KIA는 최약체로 꼽혔기 때문이었다. 개막 이후 처음 만난 4월 10~12일 대구 3연전에서 1차전과 2차전을 연패하면서 빈공약이 되는 듯 했다. 그러나 마지막 3차전을 9-7로 잡고 한 숨을 돌렸다.
그리고 5월 22일~24일 광주에서는 1차전을 패했지만 2차전 1-0, 3차전 2-0으로 거푸 영봉승을 거두었다. 특히 3차전에서는 9회초 김상수의 우중간 동점 2루타성 타구를 우익수 박준태가 전력질주해 다이빙캐치로 막아 위닝시리즈를 장식했다. 삼성을 상대로 지난 2011년 6월17일~19일 3연전 이후 무려 1438일 만에 위닝시리즈였다.

6월 12일 광주에서 다시 만난 양팀은 1승씩 나누었고 3차전은 비로 연기되었다. 7월 21일 대구에서 열린 3연전에서도 KIA는 1차전을 스틴슨의 호투를 앞세워 2-1로 잡고 2차전을 내줬으나 3차전은 양현종을 내세워 7-2로 승리했다. 시즌 두 번째 위닝시리즈였다. 8월 13일 광주 2연전은 1승씩 나눠가졌고 이날 영봉승을 낚으며 8승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KIA는 올해 삼성을 상대로 팀 방어율 4.30을 기록했다. 시즌 팀 방어율 4.68보다 낫다. 세 번의 영봉승, 4개의 홀드와 5개의 세이브가 있다. 불펜이 정상적으로 가동했다. 투수진이 15홈런을 내주었지만 타선은 삼성의 강력한 투수진을 상대로 22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삼성전 타율도 2할6푼2리로 시즌 타율(.253)보다 높다. 김주찬이 3할6푼2리, 4홈런, 9타점으로 강했고 필도 3할2푼, 4홈런,9타점을 기록했다. 타율이 2할6푼5로 낮은 이범호도 3할2푼6리, 3홈런, 8타점으로 삼성전에 강했다.
예전 같으면 후반게 숱하게 역전패를 당했으나 올해는 후반 역전패가 없었다. 삼성전에서 블론세이브가 없을 정도로 계투진도 잘돌아갔다. 1회에 먼저 점수를 뽑고 바로 역전을 내준 것이 두 번 있었을 뿐이다. 물론 KIA도 두 번의 중반 역전승이 있다. 선발투수 가운데 스틴슨은 3승1패, 방어율 2.78, 양현종이 2승, 방어율 1.29로 강했던 것이 주효했다.
선수들이 삼성을 상대로 주눅들지 않고 경기를 했다는 점이 컸다. 김기태 감독이 선수들에게 주문한 것이었다. 올해 KIA가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례이다. 김감독은 약속을 지켰지만 또 다른 숙제도 있다. 넥센과 NC에게 지독하게 약했다. 올해도 넥센에 4승12패, NC에 4승9패로 밀리고 있다. 김기태 감독은 "일단 삼성과의 천적 관계를 청산하면 다음 목표는 두 팀이 될 것"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년 시즌 두 천적을 상대로 묵을 빚을 갚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su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