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선동렬?’ 박병호, 역대 최고 위압감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9.06 06: 38

“선동렬이 몸을 풀면 상대 팀 선수들은 기가 죽었다. 그대로 경기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응룡 감독도 가끔 그런 심리를 이용할 때가 있었다”
프로야구 초창기를 회고하는 원로들이 가끔 농담을 섞어 하는 말이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 리그 최고의 투수인 선동렬을 보면 지레짐작 겁을 먹고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당시 선동렬은 리그 역사에서 점수를 내기가 가장 어려운 선수였으니 무력시위를 보는 좌절의 눈빛도 이해는 간다. 선동렬을 상대로 홈런이라도 치면 “눈을 감고 쳤다”라고 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그리고 2015년, 이제는 타석에서 그런 위압감을 주는 선수가 나타났다.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며 전무했던 4년 연속 홈런왕을 향해 가고 있는 박병호(29, 넥센)다. 에피소드도 있다. 3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전이었다. 이날 손가락 통증으로 선발 라인업에서 빠진 박병호는 7-6으로 앞선 연장 10회 1사 2루 상황에서 대타로 나왔다. 한화는 그런 박병호를 거르는 쪽을 선택했다.

그런데 그런 박병호는 정작 타격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칫 무리를 했다가 손가락 통증이 더 심해지면 회복 기간만 길어질 우려가 있었다. 염경엽 넥센 감독부터가 “치려고 하지 마라. 그냥 걸어 나가면 된다”라고 지시를 내린 터였다. 점수를 내주면 안 되는 한화는 박병호의 장타력도 의식했고 또 1루를 채우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고의사구를 준 것이다. 한화도 이득을 취하려는 움직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넥센은 원하는 바를 이뤘다. 만약 다른 대타였다면 고의사구까지는 생각하지 않을 법도 했었다.
염 감독은 당시 상황에 대해 “정황상 저쪽(한화)에서 고의사구를 지시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박병호를 내보낸 것”이라면서 “그 다음 타자는 박동원이었는데 우리 팀에서 빠른 공을 가장 잘 치는 선수다. (당시 상대 투수인) 권혁은 대부분의 공이 직구 아닌가. 주자가 더 나가면 이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치지도 말 것’을 주문한 박병호를 대타로 내보낸 사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박동원은 그 계산대로 좌전 적시타를 쳤다.
승부의 세계에서 늘상 있는 치열한 두뇌 싸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박병호의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대변하는 일이기도 하다. 실제 투수들은 “올해 박병호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코스의 약점을 많이 보완했다. 던질 곳이 마땅치 않다”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 더 올라갈 곳이 없어 보였던 박병호는 올해 지난해와 비슷한 홈런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는 반면 타율은 3할3리에서 3할4푼8리까지 올랐다. 기록에서는 흠을 잡기 어려운 완성형 선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메이저리그(MLB) 진출을 선언한 강정호가 태평양을 건넜을 때, 많은 이들은 넥센 타선이 약해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5번 강정호가 없어진 4번 박병호 또한 위력이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그런 예상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철저하게 빗나갔다. 넥센은 팀 타율 3할4리를 기록 중이며 박병호의 기록도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염경엽 감독은 “박병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강정호의 빈자리까지 박병호가 메워주고 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그런 박병호 때문에 또 다시 고민이 시작될 넥센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선언하지는 않았으나 박병호 또한 올 시즌을 마친 뒤 포스팅시스템(비공개경쟁입찰)을 통해 MLB로 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MLB 팀들의 구애 수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팬들의 여론도 박병호가 더 큰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실험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강하다.
이에 대해 염 감독은 “강정호의 공백은 박병호와 다른 선수들이 메웠지만, 박병호까지 빠지면 답은 없다. 유한준도 FA를 얻는다. 자칫 잘못하면 3·4·5번이 모두 빠질 수 있다. 이는 너무 큰 공백”이라면서 “결국 점수를 덜 주는 방향, 그리고 세밀한 야구의 방향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라고 넌지시 고민을 드러냈다. 이제 박병호는 한 두명의 선수가 공백을 대체하기는 어려운 최고의 위압감을 가진 타자로 성장했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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