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포는커녕 움직일 만한 말도 없는데 꿈쩍도 안 한다. 상황적으로 응당 약해져야 할 넥센 타선이 시즌 내내 이어진 숱한 악재를 딛고 ‘사기 장기판’을 벌이고 있다. KBO 리그 역대 최고 팀 타율에도 진지하게 도전 중이다.
넥센 타선은 여전한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7일까지 124경기에서 팀 타율이 무려 3할3리다. 이는 리그 평균(.279)을 훨씬 상회하는, 2위 삼성(.300)에도 근소하게 앞선 리그 1위 기록이다. 다른 지표도 리그 정상급이다. 183개의 홈런은 공동 2위인 삼성과 롯데(이상 151개)에 크게 앞선 1위고 득점(811점), 타점(765개), 팀 장타율(.468), 팀 OPS(.843)에서도 죄다 1위를 달리고 있다.
타선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은 팀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치고 나갈 줄은 몰랐다. 넥센은 올 시즌을 앞두고 지난해 엄청난 활약을 펼친 강정호(28, 피츠버그)가 메이저리그로 떠났다. 강정호 한 명의 공백만으로도 팀 타율과 장타력 하락은 예상된 터였다. 염경엽 넥센 감독도 “한 선수가 강정호의 공백을 메울 수는 없다. 모든 선수들이 그 공백을 나눠 들어야 한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대체자를 찾기 힘들다는 선언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주축 선수들이 시즌 내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지난해 200안타의 대업을 세운 서건창은 4월 9일 잠실 두산전 당시 1루 베이스에서 고영민(두산)과 충돌하며 발목 부상을 당했다. 넥센은 팀의 붙박이 리드오프를 두 달 동안 활용하지 못했다. 중심타자인 이택근은 크고 작은 부상으로 올 시즌 86경기 출전에 그쳤다. 최근에는 윤석민 김민성이 부상을 당해 차례로 2군에 내려갔으며 간판타자인 박병호조차 손가락 부상으로 지난 주 5경기에 사실상 뛰지 못했다.
그럼에도 넥센 타선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 팀 타율 1위가 이를 증명한다. 염경엽 감독은 “주축 타자들이 자신들의 한계를 또 한 번 뛰어넘고 있다”라며 그 원동력을 설명했다. 실제 박병호는 올 시즌 3할4푼8리의 타율을 기록함과 동시에 47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3할(.316)을 쳤던 유한준은 올 시즌 토종 최고 타율(.355)을 기록하며 역시 자신의 한계를 깨뜨렸다.
그 외 김민성 윤석민 또한 개인 최고 성적을 내고 있다. 두 선수는 자신들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넘어섰거나 넘어서기 일보 직전이다. 외국인 선수 스나이더도 몇몇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다. 여기에 새 얼굴들의 발굴도 반갑다. 유격수 김하성은 3할-20홈런-80타점에 도전할 만한 성적이고 지난해 말 군에서 제대한 고종욱은 3할3푼2리로 규정타석에 진입했다.
넥센 타선은 이제 마지막 스퍼트를 노리고 있다. 지난 주 벤치를 지켰던 박병호가 복귀를 준비 중이고 2군에 내려간 김민성도 열흘을 채우면 곧바로 1군에 올라올 예정이다. 서건창의 페이스도 꾸준히 상승세다. 그렇다면 넥센은 지난해 세웠던 창단 후 최고 팀 타율(.298)은 물론 KBO 리그 역대 시즌 최고 타율에도 도전할 수 있다.
KBO 리그 역대 팀 타율 3할을 넘겼던 팀은 1987년 삼성(.300)과 지난해 삼성(.301)밖에 없다. 삼성은 역사적인 타고투저의 흐름 속에 지난해 3할1리의 팀 타율을 기록하는 대업을 세웠다. 그러나 넥센이 현재 페이스를 이어간다면 그 기록은 1년 만에 경신된다.
여기에 역대 4번밖에 없었던 팀 200홈런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이 기록은 2003년 삼성(213개)이 가지고 있으며 1999년 KIA(210개)·삼성(207개), 2000년 현대(208개)가 달성한 바 있다. 넥센은 지난해 199개로 홈런 하나가 모자라 이 클럽 가입에 실패했는데 144경기 체제로 확장된 올해는 무난히 신기록을 세울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넥센은 이미 2년 연속 800득점을 달성한 역대 최초의 팀이 된 바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