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지은 사람은 물론 나쁘다. 하지만 이를 알고도 묵인한 사람에게도 죄가 있다.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이 간과한 사실이다.
KBL은 8일 오후 재정위원회와 이사회를 소집해 프로농구 선수들의 승부조작 및 불법스포츠도박 혐의에 대해 논의했다. KBL은 같은 날 오전 경찰이 입건한 12명 중 은퇴선수 박성훈(전 삼성)을 제외한 현역선수 11명에 대해 기한부 출전 보류 판정을 내렸다.
KBL이 발표한 혐의자는 안재욱, 이동건(이상 동부), 함준후(전자랜드), 신정섭(모비스), 오세근, 전성현(KGC), 김선형(SK), 김현민, 김현수(이상 KT), 유병훈(LG), 장재석(오리온스) 이상 11명이다. 이들은 혐의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2015-2016시즌 선수로 출전할 수 없다. 현역 상무선수 중에서도 혐의자가 있지만 KBL은 이들을 미등록선수로 분류해 징계대상에서 제외했다.

▲ 자진신고한 김선형...KBL 알고도 묵인
프로농구 신인선수들은 드래프트 지명 후 오리엔테이션을 거친다. 여기서 불법스포츠도박 등에 대해 경각심을 키우는 예방교육을 실시하게 돼있다. 불법도박 또는 합법적인 스포츠토토 경험이 있는지 여부를 서면으로 작성해 제출토록 하고 있다. 2013년 강동희 전 감독의 승부조작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KBL은 예방교육을 더 강화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유명무실했다.
2011년 전체 2순위로 프로에 데뷔한 김선형은 신인선수 오리엔테이션 과정에서 대학생 때 불법도박 경험이 있었다고 자진으로 신고했다. 하지만 KBL은 당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넘어갔다. 김선형은 대학시절 불법도박이 프로경력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갔다. 결과적으로 이는 KBL이 공식적으로 죄를 덮어준 격이 됐다.
혐의자 중 장재석, 유병훈, 김현수 등 많은 선수들이 김선형의 중앙대 후배들이다. 김선형은 아무런 징계 없이 프로에서 맹활약을 했다. 후배들이 불법도박에 대한 경각심을 느꼈을 리 만무하다. ‘농구만 잘하면 된다’는 무사안일주의가 팽배할 수밖에 없다. 김선형이 제대로 징계를 받았다면 후배들의 태도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KBL은 이제와 “김선형은 자진신고를 했다. 자진신고를 한 부분에 대해 그 시점에서 다루는 것이 맞았다. 정황상 그 당시 징계하기가 어려웠다. 연맹차원에서 징계를 논의할 때 자진신고를 한 부분에 대해 정상참작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초에 KBL이 김선형을 제대로 징계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다.

▲ 도박 안했다던 선수들, 팬들 두 번 속였다
혐의자 12명 중 김선형을 제외한 나머지 11명은 오리엔테이션에서 제출한 서면자료에서 ‘불법도박을 한 사실이 없다’고 체크했다. 몇몇 선수는 경찰조사 때 자백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적어도 신인 때 서면상으로 불법도박을 했다고 명확히 기술한 선수는 김선형이 유일하다. 대부분의 혐의자들은 거짓진술로 KBL과 팬들을 기만한 셈이 된다.
2013년 농구계는 강동희 전 감독의 승부조작 파문으로 발칵 뒤집혔다.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현역감독이 승부조작에 가담한 초유의 사건이었다. 지난 5월에는 전창진 전 KGC 감독이 승부조작 혐의에 휘말리면서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혐의자들이 2009년 8월부터 2015년 3월까지 베팅을 했다고 한다. 강동희 사태를 눈으로 경험하고도 도박을 계속했다는 말이 된다. 경찰에 따르면 혐의자 중 4명은 프로데뷔 후에도 계속 도박을 했다. 구단 자체조사에서도 혐의사실을 부인했다. 불법도박에 대한 죄의식이 전혀 없다는 증거다. 팬들을 두 번 속인 이들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를 범했다.
▲ 공소시효 지난 선수 1명, 공개하고 징계해야
경찰은 유도와 레슬링종목 포함, 조사대상자 31명 중 3명은 군부대로 이송했고, 2명은 불기소 처분했다. 현역군인신분인 3명의 선수 중 적어도 한 명은 상무소속 농구선수다. 불기소 처분을 받은 2명 역시 농구선수다. 한 명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나머지 한 명은 공소시효 5년이 지나 처벌이 불가했다. 불법도박 혐의가 있으나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어 입건하지 않은 것.
그런데 KBL은 상무소속 선수와 공소시효가 지난 선수 1명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KBL은 혐의를 받고 있는 상무소속 선수에 대해 “KBL 등록이 정지된 상태다. 그 선수가 복귀할 때 거기에 따른 조치를 할 것”이라며 실명공개를 꺼렸다.
공소시효가 지난 선수 1명에 대해 이성훈 사무총장은 “대학시절에 했다면 (징계를)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다. 경찰에서 볼 때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면서 역시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공소시효가 지난 선수 역시 혐의자들과 같은 대학출신이다. 다만 2010년 8월 이전에 도박을 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처벌할 수가 없을 뿐이다.

경찰이 처벌하지 않기 때문에 KBL이 죄를 봐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KBL의 징계대상은 오히려 경찰조사보다 범위가 넓어야 한다. 고객인 농구팬들이 납득할 만한 징계를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불법도박 혐의가 있는 선수가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돼 출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는 팬들을 기만하는 행위다. 나아가 무고한 여러 선수들까지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KBL은 공소시효가 지난 선수와 상무소속선수의 이름을 밝히고 이들을 똑같이 징계해야 할 것이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