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기록 이상의 뜨거움을 주는 선수가 있다. 그 선수의 몸짓 하나에 덕아웃과 관중석의 분위기가 산다. 안타와 같은 기록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문제다. 우리는 그런 선수들을 ‘스타’라고 부른다. 롯데에는 손아섭(27)이 있다. 손아섭이 살자, 롯데가 살아났다. 롯데의 심장이라고 부를 만하다.
손아섭은 8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최근 기록을 이어나갔다. 4-1로 앞선 4회 무사 2루에서 세 번째 타석을 맞이한 손아섭은 SK 선발 메릴 켈리를 상대로 중전 적시타를 터뜨렸다. 손아섭은 이 안타로 최근 21경기 연속 안타, 그리고 42경기 연속 출루라는 쉽지 않은 두 기록을 동반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팀도 10-4로 이기고 5위를 탈환했으니, 잠자리에 들어서는 손아섭의 마음은 한결 가벼웠을 법 했다.
7월 10일 사직 롯데전 이후 기록한 42경기 연속 출루는 올 시즌 KBO 리그 최고 기록이다. 타격에는 사이클이 있고 운이 항상 따라주지는 않는 만큼 10경기 이상 연속 출루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또한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로 경기에서 일찍 빠져도 달성하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손아섭은 올 시즌 리그 최고의 ‘꾸준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올 시즌 전체가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았던 손아섭이다. 4월 한 달 동안의 타율은 2할4푼5리였다. 손아섭답지 않은 타율이었다. 5월 3할8푼6리의 고타율을 기록하며 한 번 올라가려는 찰나, 부상이 찾아와 6월에는 4경기 출전에 그쳤다. 주변 상황까지 여러모로 꼬이는 듯 했던 시즌이었다. 그러나 연속 출루가 시작된 7월 10일 이후, 손아섭은 다시 리그 최고 타자의 면모를 되찾았다.
손아섭은 이 기간 동안 타율 3할6푼9리를 기록했다. 두 달 가까운 기간 이 정도 타율을 기록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 출루율은 4할4푼9리, 장타율은 0.514로 OPS(출루율+장타율)는 0.963에 이르렀다. 주로 상위타선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21타점을 보태 팀 내 타점 2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활발하게 팀 득점의 길을 여는 손아섭 덕분에 롯데 타선도 점차 안정을 찾아갈 수 있었다. 같은 기간 리그 전체 공동 3위인 득점(41개)을 생각하면 상부상조라고도 볼 수 있다.
이는 롯데의 호성적으로 이어졌다. 롯데는 이 기간 동안 23승20패1무를 기록해 4위에 올라있다. 7월 9일까지 롯데의 성적은 81경기에서 37승44패로 5할을 한참 밑돌았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황재균이 부진했고 강민호가 잔부상이 있었음을 고려하면 결국 손아섭의 질주가 롯데의 순위 상승을 상당 부분 거들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팀이 어려울 때 손아섭의 심장이 뛰며 반등의 요소를 만들자, 5위를 향한 거인의 심장도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