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전원필승조를 만들 수 있을까.
LG 트윈스가 확장 엔트리 효과를 누리고 있다.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불펜투수들을 총동원, 연장 12회를 소화한 최근 두 경기를 버텨냈다. 불펜 물량공세가 통하면서 1승 1무. 갈 길 바쁜 롯데와 한화의 발목을 잡았다. 진해수 김지용 이승현이 합류한 새로운 불펜진이 잠재력을 발휘한 것이다. 오랜만에 불펜진의 힘으로 상대 타선을 무력화하는 LG의 야구가 나왔다.
2013시즌과 2014시즌 LG의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불펜진의 역할이 컸다. 2년 연속 불펜진 평균자책점 1위(2013: 3.40, 2014: 4.22)에 오르며 지키는 야구, 뒷심 강한 야구를 했다. 경기 후반 지고 있어도, 불펜투수들이 추가실점하지 않으면서 LG는 수많은 역전승(2013: 35회, 2014: 32회)을 만들었다. 9회말과 연장전, 끝내기 승리가 유난히 많은 팀도 LG였다.

갑자기 이뤄진 일은 아니었다. LG는 2012시즌부터 투수들의 보직을 재정립하며 하나씩 톱니바퀴를 맞춰나갔다. 선발투수였던 봉중근과 유원상을 각각 마무리투수와 셋업맨으로 기용했는데 이는 신의 한수가 됐다. 봉중근은 마무리투수 전향 첫 해부터 수호신이 됐고, 유원상도 당해 필승공식이 됐다.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던 이동현도 다시 올라섰다. 그러면서 LG는 불펜진 평균자책점 3.60, 이 부문 리그 3위를 찍었다.
2015시즌 LG의 최대 강점도 불펜진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봉중근을 시작으로 불펜진 전체가 흔들렸다. 봉중근은 개막 후 한 달 동안 10경기에 나서 평균자책점 17.47로 무너졌다. 개막 2연전 두 번째 경기에서 끝내기 홈런을 허용하더니 좀처럼 부진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우규민과 류제국의 부상 공백도 고스란히 불펜진이 짊어졌다. 4회 혹은 5회부터 불펜진이 가동되곤 했고, 이는 불펜진 과부하로 연결됐다. 5월 중순 류제국과 우규민이 돌아왔고, 선발진이 안정을 찾는듯하자 6월말 정찬헌이 음주사고로 이탈했다.
결국 LG의 지키는 야구는 허무하게 사라졌다. 투타 엇박자에 시달리며 지난 2년과 같은 대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불펜진 평균자책점 4.82로 리그 6위. 더 이상 LG 불펜은 승리를 보장하는 공식이 아니다. 시즌 전적 또한 54승 70패 2무. 3년 만에 가을잔치는 남의 일이 됐다.
그런데 LG는 마냥 고개만 숙이고 있지는 않았다. 7월말 SK와 트레이드를 통해 임훈 진해수 여건욱을 데려왔고, 얼마 전에는 봉중근을 마무리투수에서 선발투수로 전환시켰다. 불펜진도 리빌딩을 단행, 남들보다 먼저 2016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새 불펜진의 중심에는 젊은 투수들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임정우가 마무리투수로, 이승현과 김지용이 박빙의 순간 마운드에 오른다. 올 시즌 선발과 불펜을 모두 소화한 임정우는 향상된 구위를 앞세워 자신 있게 공을 뿌리고 있다. 슬라이더 스플리터 커브 등 다양한 구종을 갖고 있고, 주자 견제에도 능한 만큼, 2016시즌 필승조의 한 축을 담당할 가능성이 높다.
임정우는 “올해 잠실구장에서 150km로 찍어봤다. 그런데 이게 평균구속이 아니라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그만큼 공에 힘이 붙었다는 뜻이 되니까 자신감은 생긴다. 올해는 선발투수부터 패전조, 롱릴리프, 셋업맨, 그리고 마무리까지 모두 다 해봤다. 정신없이 일 년을 보내면서 느낀 점도 많다. 100이닝을 넘게 소화하면서 컨디션 조절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승현과 김지용도 올해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부터는 비중을 늘려갈 가능성이 높다. 김지용은 “동기인 승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주 주고받는다. 사실 승현이와는 키와 투구스타일이 모두 비슷해서 서로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되곤 한다. 우리 둘 중 한 명이 타자와 승부를 피해가거나 볼넷을 범하면 ‘우리가 살 길은 정면승부밖에 없다’고 서로를 충고해주곤 한다”고 웃었다.
트레이드로 LG 유니폼을 입은 진해수도 상승세다. 진해수는 올해 SK에선 12경기 7⅓이닝 동안 6실점(5자책) 평균자책점 6.14를 기록했으나, LG에선 20경기 17⅓이닝 7실점 평균자책점 3.63을 찍고 있다. 한 층 안정된 제구력으로 좌우타자를 가리지 않고 1이닝 이상도 소화한다. 신재웅을 SK로 보낸 것을 두고 많은 이들이 물음표를 달았으나, 이대로라면 윈-윈 트레이드다. 진해수는 윤지웅과 함께 LG 불펜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좌투수로 올라섰다.
LG의 시즌 후 첫 번째 목표는 FA가 되는 이동현의 잔류다. 아직 2016시즌 마무리투수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이동현 정찬헌 임정우가 후보군을 형성할 듯하다. 여기에 신승현 유원상 김지용 이승현 윤지웅 진해수 등도 전원필승조의 일원이 되려고 한다. 이동현과 신승현을 제외하면 모두가 20대. 이대로라면 고민 없이 4, 5년을 보낼 수 있는 불펜진이 완성된다.
봉중근은 마무리투수 완장을 내려놓으며 “마무리투수는 구위가 정말 중요하다. 지금은 나보다 어린 후배들의 구위가 더 좋다. 힘으로 타자를 누를 수 있는 공을 갖고 있다”며 “내가 없어도 우리 불펜진은 다시 더 강해질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젊은 불펜투수들이 도약할 때, LG는 다시 가을잔치를 바라볼 것이다. / drjose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