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막판이라 그럴까. 메이저리그(MLB)와 KBO 리그에 ‘투수 이닝’ 논란이 거세다. 그런데 뜯어보면 성격이 조금 다르다. MLB는 브레이크가 논란이고, KBO는 액셀레이터가 논란이다. 뉴욕 메츠와 한화의 이야기다. 뉴욕 메츠는 ‘에이스’ 맷 하비의 180이닝 제한으로 한바탕 난리가 났고, 한화는 불펜 투수들의 운영 방식으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투수 운영은 딱 부러진 결론이 없다. 선수의 특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논란에서 중요한 지점이 있다. 하비의 이닝제한 자체보다는, “하비에게 왜 이닝제한이 걸렸느냐”라는 좀 더 근본적인 물음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하비는 2013년 팔꿈치인대접합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았다. 이 수술로 2014년 한 해를 통째로 날렸으며 이는 올해 이닝제한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술을 받은 투수에게 갑자기 큰 부하를 주면 안 된다”라는 기본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하비의 2013년에는 어떤 징조가 나타났을까. 하비는 2012년 MLB에 데뷔했고 데뷔 시즌 10경기에서 59⅓이닝을 던지며 메츠의 ‘차세대 에이스’로 각광받았다. 마이너리그 110이닝을 합치면 30경기서 170이닝 정도였다. 이런 하비의 투구이닝은 2013년 들어 26경기 178⅓이닝까지 늘어났다. 한 단계 수준이 높아 전력을 다해야 하는 MLB 무대에서 시즌 초반 늘어난 투구이닝에 하비는 분명 ‘이상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바로 릴리스포인트가 시즌 중에도 현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투수는 투구 동작 자체가 인간의 정상적인 활동 범위를 역행한다. “손들고 서 있어”가 체벌이 될 수 있는 이유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에 힘이 떨어지면 점진적으로 릴리스포인트도 낮아진다. 문제는 그 릴리스포인트의 하락이 급격하게 이뤄지는 경우인데 2013년의 하비가 그랬다. ‘브룩스베이스볼’에 의하면 2013년 초 하비의 릴리스포인트는 10.3 정도였다. 그러나 5월에는 9.5로 떨어지더니 6월에는 8점대로 더 떨어졌고 8월에는 8.0까지 추락했다. 또래 투수들에게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우하향 그래프였다. 그리고 팔꿈치에 통증이 왔다.
릴리스포인트가 갑자기 이렇게 낮아진다는 것은 분명 신체적으로 어떠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적어도 MLB에서 이 논리는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것이 단순한 피로누적일 수도 있지만 어떠한 잠재적 부상 요인을 내포하거나, 혹은 통증을 느끼며 뛰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릴리스포인트가 낮아지면 당연히 투수는 자신의 포인트에서 공을 던지기 어려워지는데, 여기서 구속을 내려 힘을 주면 어깨나 팔꿈치는 더 망가진다. 악순환이다. 2013년의 하비는 딱 그런 경우였다.
그렇다면 많이 던진 한화의 불펜 투수들은 문제가 없을까. 한화는 올 시즌 내내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나는 투수 운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그 결과 권혁은 순수 불펜 이닝이 무려 106이닝이고 박정진은 96이닝을 던져 100이닝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그 후유증은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전반기 4.01이었던 권혁의 평균자책점은 후반기 7.28이 됐다. 또 하나의 ‘애니콜’이었던 박정진은 9월 2일부터 7일까지 이례적인 긴 휴식을 갖기도 했다. 쓰고 싶어도 못 쓸 이유가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철저한 분석 야구의 대가답게 김성근 한화 감독은 현상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 김성근 감독은 10일 대전 SK전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두 선수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김 감독은 권혁에 대해서는 “공을 위에서 때리지 못한 채 옆에서 나온다. 스피드는 나오지만 볼 끝에 힘이 없다”라고 했다. 박정진은 “좋을 때는 볼을 위에서 ‘팍’하고 챈다. 그런데 안 좋을 때는 그렇지 않다. 8일 잠실 LG전도 그랬다”라고 설명했다.
권혁은 시즌 초반 리그에서 가장 위력적인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였다. 공이 살아서 들어왔다. 단순한 구종으로 타자들을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다. 박정진은 리그에서 손꼽히는 높은 릴리스포인트를 가지고 있는 선수다. 높은 곳에서 마치 폭포수처럼 큰 낙폭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는 박정진을 부활로 이끈 주무기였다. 김성근 감독도 그런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고 인정한 것이다.
더 논란이 된 것은 김성근 감독이 이런 문제를 ‘심리적인’ 요인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김성근 감독은 “권혁은 의욕을 줄여야 한다.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힘이 들어간다. 박정진도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이야기했다. 단순한 심리적인 요인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하지만 현상을 잘 짚고 김성근 감독이 원인을 놓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이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우려는 소수의 목소리가 아니다.
김성근 감독은 권혁에 대해 “공이 옆에서 나온다”라고 했다. 한 투수코치는 “대체로 중심이동이 안 된다는 것은 하체의 힘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체의 힘이 떨어지면 회전이 약해지고 구속을 유지하려면 어깨와 팔꿈치에 부하가 걸린다”고 우려했다. 박정진은 10일 대전 SK전에서 김성근 감독의 말이 그대로 드러났다. 구속은 둘째치더라도 릴리스포인트가 완전히 흔들리며 슬라이더가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힘없이 들어온 빠른 공은 정의윤의 3점 홈런으로 이어졌다. 구속은 138㎞까지 떨어져 있었다. 다른 관계자는 "요 근래 쉬었는데 그 정도라면 한계에 왔다고 봐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물론 불펜투수들은 체력적으로 고된 보직인 만큼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구속과 릴리스포인트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구위 저하는 다른 팀 불펜투수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 가지고 있다. 권혁과 박정진도 그런 케이스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부상 위험도다. 양보해 똑같은 피로도를 가지고 있다면 쳐도, 그 피로도 속에 더 많은 경기에 나섰던 두 선수의 부상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이치다. SK 시절 많은 투수들의 수술 결정을 지켜봤던 김성근 감독이 이를 모를 리는 없다. 어쩌면 명확한 현상에도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많은 길을 걸어왔을지도 모른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