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활짝 웃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홍성흔(38, 두산 베어스)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지금 느끼는 미안함을 갚는 방법은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밖에는 없다.
홍성흔은 지난 13일 잠실구장에서 있었던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kt wiz와의 경기에서 팀이 2-2로 팽팽히 맞서던 7회말 1사 1, 2루에서 홍성용을 상대로 외야 좌중간에 떨어지는 적시타를 날렸다. 이것이 결승타가 됐고, 두산은 4-3으로 승리해 길었던 6연패를 끊었다. 홍성흔의 한 방이 분위기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경기 후 수훈선수로 선정된 홍성흔은 "죄송한 마음밖에 없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리고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감독님, 동료 선수들, 팬들께 미안한 마음뿐이다"라고 말을 이었다. 홍성흔이 기억하는 마지막 인터뷰 날짜는 통산 2000안타를 쳤던 지난 6월 14일이다. 다음 인터뷰까지 거의 3개월이 걸렸다.

스스로도 어색해할 정도로 홍성흔이 인터뷰 시간을 가진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평소 활발한 성격으로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지 않지만, 이번 시즌 부진이 길어지면서 홍성흔은 취재진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기 전에도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였는지 덕아웃 앞을 지나가지 않고 일부러 뒤로 돌아 먼 길로 가곤 했다.
계속해서 이번 시즌 경기들을 돌아본 홍성흔은 "팀에서 기대했던 바가 컸는데 베테랑과 외국인 선수들이 부진한 상황에서 중심타선에 자리를 잡지 못했다. 주전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선수로 (선수생활을) 마무리 해야할 것 같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욕심을 버리고 주어진 환경 안에서 충실하며 선수생활 막바지를 보내겠다는 계획이 엿보였다. 두산으로 돌아오며 맺었던 4년 계약이 2016 시즌까지기 때문에 천천히 마지막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홍성흔은 이어 "방망이를 돌리다 보면 감을 찾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했다. 타격코치님과 감독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죄송하다. 그래도 고참으로서 팀 분위기가 처져있을 때 결승타로 연패를 끊어 다행이다. 남은 경기 처지지 않고 포스트시즌에 맞춰서 주전이 아니더라도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로 절실함을 전했다.
결승타 상황을 복기하면서도 아쉬움이 묻어났다. 홍성흔은 볼카운트 2S에서 몸쪽으로 들어온 스트라이크 같은 볼을 골라낸 뒤 4구째를 받아쳐 결승타를 뽑아냈다. 그 상황에 대해 그는 "몸쪽에 꽉 차는 좋은 공이 왔는데 쳤으면 병살타가 나왔을 것 같다. 그 다음 공은 실투성 높은 코스였다. 올해는 실투를 놓친 것이 많아서 부진했던 것 같다. 상황에 맞는 스윙을 하지 못했던 적이 많다"며 결승타보다 그 이전에 살리지 못한 많은 기회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래도 오랜만에 베테랑다운 경기를 펼친 것은 위안이었다. "니퍼트가 '매번 젊은 친구들이 해주다가 오랜만에 올드보이들이 해냈다'고 말해주더라"며 홍성흔은 웃었다. 이날 경기에서 두산은 선발 장원준이 6이닝 2실점(1자책) 호투하고도 쉽게 승기를 잡지 못했지만, 7회초 구원 등판해 2이닝 무실점한 승리투수 더스틴 니퍼트와 7회말 결승타의 주인공 홍성흔이 팀을 건져냈다.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기에 한 경기에서 보인 활약만으로 깊은 곳에 품고 있던 무거운 감정들을 한 번에 다 떨쳐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경기에만 몰두하며 지금의 고비를 극복하겠다는 생각이다. 홍성흔은 "2007년 포수를 그만뒀을 때도 힘들었지만 올해만큼 야구장에 나오기 힘든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앞으로 남은 경기가 더 중요한 만큼 더욱 집중하겠다"며 다시 힘을 내보겠다는 다짐도 드러내보였다.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