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흔(38, 두산 베어스)이 본연의 활기찬 모습을 되찾고 있다. 타석에서 장타가 터지기 시작하며 얼굴에도 조금씩 웃음이 피고 있다.
홍성흔은 17일 잠실구장에서 있었던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만루홈런과 2루타 2개 포함 5타수 4안타 5타점을 쓸어 담았다. 홍성흔이 한 경기에 4안타를 몰아친 것은 이번 시즌 들어 처음이다. 팀은 13-0으로 대승을 거뒀고, 3회말 송승준을 상대로 터뜨린 만루홈런은 올해 두산의 첫 그랜드슬램이기도 했다.
경기 후 홍성흔은 "타격코치님이 '너한테는 변화구 아니면 몸쪽이니까 두 가지만 노려라'라고 하셔서 변화구를 보고 있었다. 감독님도 '너무 잘 치려고 하는 생각때문에 쭈그리고 치니까 방망이가 안 빠진다. 너무 닫아놓지 말고 과감하게 열고 쳐라'라고 해주셨다"며 코칭스태프가 해줬던 조언들을 공개했다.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하자면 노림수와 자신감이었다.

변화구를 노리되 스윙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그것이 맹활약의 비결이었다. 홍성흔은 "오늘은 정말 내 마음대로 돌렸다. 이제 하체 턴이 되는 것 같다. 풀 스윙을 해서 안 된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풀 스윙을 해야 좋은 타구가 나온다. 올해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오늘은 단순하고 편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한 것이 좋은 결과로 나타난 것 같다"라고 말을 이었다.
예열을 마친 방망이가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점차 정상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가을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홍성흔은 "선수들이 '벤치에 있는 할아버지 한 명이 잘 해야 하는데…' 하는 바람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너무 창피했다"고 미안함을 표현한 뒤 "후배들이 해줘서 여기까지 왔는데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나도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다"며 지금이라도 타격감이 돌아오고 있어 다행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두산의 최고참인 홍성흔은 타석 안에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은 물론, 타석 밖에서도 덕아웃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하지만 타석 안에서의 일이 되지 않으면 밖에서도 존재감을 보이기 어렵다. 그는 "야구가 잘 돼야 덕아웃 리더도 될 수 있다. 이제는 주전에서 밀린지도 오래 됐지만 정신 차려서 후배들이 한 것을 이어나가 잘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부끄럽지 않은 타격 성적으로 팀 분위기 상승에까지 일조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올해 타격 부진으로 많은 비난에 시달린 점은 본인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나를 기용하시면서 감독님도 비난을 많이 들으셨다고 알고 있다"고 말할 때 홍성흔의 표정은 진지해졌다. 동료들은 물론 코칭스태프에 대한 미안한 감정까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내 담담하게 "최악을 이겨낼 수 없다면 최고를 맛볼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라면서 인내하며 힘든 시간들을 극복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다음 시즌까지 계약되어 있는 홍성흔은 연배가 가까운 강동우 코치의 관리 하에 현역생활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강동우 코치가 전담으로 체력 훈련을 시켜주고 있어 고맙다. 외야 펑고도 받게 하고 러닝도 시킨다. 본인도 은퇴를 해봐서 아는데 은퇴를 앞두고 이렇게 붙어서 관리해주는 코치가 없었다고 하더라"고 이야기했다. 은퇴한 선수의 심정을 잘 아는 강 코치는 홍성흔이 후반기 23경기에서 타율 3할1푼8리로 선전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시즌 내내 부진하며 어느 때보다 퓨처스리그에서 지냈던 시간이 길었다. 하지만 풍부한 가을 경험과 한 방, 벤치 분위기를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홍성흔의 존재는 포스트시즌에 나서는 두산에 필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스스로도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좋아지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페이스는 올라와 있다. 홍성흔이 만들어낸 두산의 시즌 첫 만루홈런은 가을이 오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