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솔직하다] 강한 2번 타자? KBO 리그는 아직 멀었다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5.09.19 06: 00

2000년대 이후 메이저리그에는 세이버메트릭스가 본격적으로 전파됐다. 그 전까지는 일부 앞서가는 구단의 전유물이었던 이 '숫자 놀음'은 이제 메이저리그에서 큰 힘을 얻고 있는 주류로까지 성장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주장 가운데 하나는 바로 '강한 2번 타자'다. 전통적으로 2번 타자는 빠른 발과 뛰어난 작전 수행능력이 좋은 선수들로 채워졌다. 출루 능력이 좋은 1번 타자가 진루하면, 어떻게든 진루를 시키는 게 2번 타자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는 팀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가 2번 타순에 배치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현역 최고타자 마이크 트라웃(에인절스)도 2번 타자다.
KBO 리그도 이 영향을 받아 한때 2번 타순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삼성 류중일 감독이다. 류 감독은 강한 2번 타자를 강조하면서 그 자리에 박한이를 기용했었다. 사실 류 감독이 꿈꾸던 가장 이상적인 2번 타자는 양준혁이었다. 적합한 인물만 있다면, 1번 타자가 출루했을 때 2번 타자가 장타로 주자를 불러들이는 게 다득점의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그래서 류 감독은 발 빠른 김상수를 9번 타자로 기용하면서 사실상 2번 타자부터 클린업트리오 역할을 기대했다.

하지만 2015년 KBO 리그에 강한 2번 타자는 없다. 올해 2번 타자로 가장 많이 출전한 선수 3명은 김종호(NC)와 정수빈(두산), 박해민(삼성)이다. 이들 모두 발 빠르고 작전능력이 좋은 전통적인 의미의 2번 타자다. 그나마 장타력을 갖춘 선수를 2번 타자로 쓰는 팀은 넥센으로 브래드 스나이더가 넥센에서는 2번 타자로 가장 많은 233타석을 소화했다.
18일 현재 KBO 리그 타순별 타율만 봐도 그렇다. 1번 타자 타율은 2할8푼6리, 2번 타자는 타율 2할6푼9리, 3번 타자는 3할8리, 4번 타자는 2할9푼8리, 5번 타자는 2할9푼4리, 6번 타자는 2할7푼, 7번 타자는 2할6푼9리, 8번 타자는 2할5푼4리, 9번 타자는 2할6푼2리를 기록하고 있다. 2번 타자의 리그 타율은 7번 타자와 똑같다. 즉 감독들이 강한 타자들을 2번 타순에 배치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 여전히 2번 타자는 모든 타순 가운데 가장 압도적으로 희생번트가 많았다. 총 219번이나 했는데, 두 번째로 희생번트가 많은 8번 타자(133번)보다도 40% 가까이 많다. 리그 전체 희생번트는 780개, 2번 타자의 번트 점유율은 28%나 된다. 여전히 KBO 리그에서 2번 타자는 번트 전문가들로 채워지는 자리다. 이 말은 곧 여전히 KBO 리그의 주류 2번 타자는 전통적인 의미의 선수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조동화(SK)가 2번 타순에서 가장 많은 19번의 희생번트를 기록했고, 그 뒤를 김민우(KIA)가 17개, 정수빈(두산)이 17개로 따르고 있다. 이우민(롯데)은 2번 타자로 나선 73번의 타석 중 11번이나 희생번트를 해 전체 타석의 15%가 번트였다. 단연 리그에서 가장 높다.
다만 타고투저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현재 KBO 리그 사정을 감안하면 2번 타자에 대한 발상의 전환도 필요해 보인다. 통계적으로 희생번트가 기대득점을 오히려 낮춘다는 건 이제 상식에 가깝다. 대신 1점이라도 낼 득점확률은 상황에 따라 조금 높아질 수도 있기에 여전히 번트는 강한 무기지만, 1회부터 기계적으로 2번 타자가 번트를 시도하는 건 다시 생각해볼 부분이다.  /cleanupp@osen.co.kr
[기록] 스포츠투아이 제공.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