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솔직하다] 한화의 희생은 가치 있었을까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9.20 06: 11

야구에는 스포츠에서는 보기 드문 ‘희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동료들의 진루를 도울 수 있는 룰이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득점으로 연결될수록 그 희생은 빛을 발한다. 하지만 무의미한 희생이라면 오히려 경기 분위기에 해만 된다. 희생번트가 양날의 검이라는 평가를 듣는 이유다.
사실 기회득점이라는 개념에도 보면 희생번트는 권장할 만한 작전이 못 된다. 무사 1루에서의 기회득점이 1사 2루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이는 MLB는 물론 KBO 리그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되는 바다. 다만 상황에 따라 이 작전을 잘 쓰면 득이 될 수도 있다. 이를 테면 1점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 상대 투수와의 상성, 뒤에 들어설 타자들의 성향 등이 잘 고려된 상황이다. 여기에 주자를 2루나 3루에 보내 상대 배터리의 선택을 강요할 수도 있다.
그래서 희생번트는 벤치 작전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하다. 희생번트 뒤의 2~3가지 장면까지 모두 고려한 그림이 필요하다. 이를 막기 위한 상대도 그 그림을 저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든다. 벤치와 벤치의 치열한 수싸움이 벌어지는 장이다. 그렇다면 올 시즌 가장 희생이 가장 빛을 발한 팀, 그리고 가장 의미가 없었던 팀은 어디일까.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다.

지난 9월 17일까지 가장 많은 희생번트를 시도한 팀은 한화였다. “야구는 감독이 하는 것”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김성근 감독은 경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벤치 스타일이다. 한화는 총 133개의 희생번트를 시도했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김 감독의 성향을 읽을 수 있다. 번트보다는 뛰는 야구의 신봉자인 김용희 감독이 이끄는 SK가 96번으로 그 다음이었다는 점은 특이사항이다. 뛸 선수가 부족해 결국 희생번트에 기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반대로 희생번트가 가장 적었던 팀은 넥센으로 58회에 불과했다. 한화에 비하면 43.6% 수준이다. NC(63회), 삼성(66회), 두산(69회)도 희생번트 시도가 적었다. 다만 희생번트의 시도만 놓고 이렇다 저렇다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넥센, 삼성, NC, 두산은 리그 평균 이상의 타격을 갖춘 팀이다. 번트를 대지 않아도 믿을 만한 타자들이 많다. 반면 한화나 SK는 평균보다 떨어진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 희생번트였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벤치 작전의 효율성을 증명하는 기준은 희생번트로 진루시킨 주자가 얼마나 많이 홈을 밟았느냐로 평가할 수 있다. KBO 공식기록업체인 ‘스포츠투아이’의 기록에서 일목요연하게 이 효율성을 알 수 있다. 한 명의 주자는 물론, 두 명의 주자가 있을 때 한 명이라도 홈을 밟을 경우는 득점이 연결된 것으로 간주했다. 이 득점연결률에서 최고는 NC와 넥센으로 나란히 57.5%를 기록했다.
적은 시도 상황에서도 가장 착실히 주자를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3위 두산은 57.3%로 1위와 거의 차이가 없었으며 4위 삼성도 55.6%의 좋은 성적을 냈다. 5위 롯데(51.8%)까지가 50%를 넘긴 팀이었다. 반면 kt(47.6%), SK(46.9%), 한화(43.2%), KIA(42%), LG(38.6%)는 그 확률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한 통계 전문가는 “성공률이 50%가 되지 않으면 그렇게 효율적으로 기능했다고 볼 수 없다”라고 분석했다.
가장 논란이 된 팀은 한화다. LG는 71회, KIA는 74회의 희생번트를 시도했다. 리그 평균과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한화는 133회의 번트에서 162명의 주자를 진루시켰다. 이는 주자가 두 명 있는 상황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번트를 댔다는 것이다. 그러나 득점연결은 43.2%에 그치며 8위에 머물렀다. 전체적으로 번트 작전이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아웃카운트 낭비가 타 팀에 비해 많았다는 것이다. 한화는 희생번트로만 5경기치 아웃카운트를 쏟아 부었다. 그러나 벤치의 작전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한 해설위원은 “번트를 대야 할 상황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러나 한화의 경우는 초반이나 빅이닝이 필요한 상황에서 번트가 생각보다 많았다”라면서 “김성근 감독이야 작전야구의 대명사인데 올해 재미를 봤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전력분석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통계 전문가는 “요즘 KBO 리그는 타고투저다. 장타로 점수가 나는 시대인데 너무 잘게 가는 스몰볼의 가치가 예전만 못한 것은 여러 지표에서 나타난다. 타자들의 득점력이 높아질수록 희생번트는 팀의 기대득점을 낯춘다. 이는 MLB 역사에도 잘 드러난다”라고 말했다. 비단 한화뿐만 아니라 희생번트의 적시적소 활용에 대해 고민하는 벤치들이 곱씹어볼 만한 대목은 될 수 있다. 정답은 없지만 숫자는 “희생번트를 대기 전, 이 방법이 과연 최선인가라고 자문해보라”라고 속삭여주고 있다. /skullboy@osen.co.kr
[기록제공] 스포츠투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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