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에이스들이 5위 싸움의 중요한 길목에서 맞붙었다. 절친한 사이지만 그라운드에서는 물러설 수 없는 진검승부가 벌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 절박한 상황이었던 양현종(27, KIA)이 웃었다. 김광현(27, SK)은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수비, 타선 지원도 아쉬웠다.
김광현과 양현종은 21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선발 맞대결을 벌였다. 1988년생 동갑내기로 청소년 대회 때부터 동료로 대표팀을 이끌었던 두 선수의 통산 5번째 맞대결이었다. 20일 승리를 거두고 43일 만에 5위 자리를 탈환한 SK, SK에 2경기를 내주며 7위로 내려앉은 두 팀 모두에게 중대한 승부였다.
두 선수는 타고투저의 광풍이 분 지난해 토종의 자존심을 세운 이들이었다. 양현종은 다승에서 토종 1위, 김광현은 평균자책점에서 토종 1위였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대표팀의 원투펀치로 활약하며 금메달을 이끌기도 했다. 사석에서는 절친이기도 하다. 경기 전 김광현의 통산 1000탈삼진 시상식 때 KIA 선수단을 대표해 축하 메시지를 건넨 선수도 양현종이었다. 하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가자 양보 없는 자존심 싸움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4번의 맞대결에서는 김광현이 우세를 보였다. 4경기에서 김광현은 2승1패 평균자책점 2.16으로 잘 던진 반면 양현종은 승리 없이 2패 평균자책점 8.40으로 부진했다. 지난해 맞대결에서도 김광현이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팀의 5위 운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나온 양현종의 기세는 이날 대단했다.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치열한 투수전이 벌어졌다.
1회부터 불꽃이 튀겼다. 김광현은 공 7개로, 양현종은 공 9개로 1회를 삼자범퇴로 마무리했다. 2회에는 나란히 1사 1,2루의 위기 상황이 있었지만 무실점으로 버텼다. 김광현은 김민우 백용환에게 후속타를 허용하지 않았고 양현종은 이대수를 병살로 잡아냈다. 두 선수는 3회까지 나란히 11타자를 상대로 무실점을 기록하며 0의 균형을 만들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기가 인천을 감싸고 있었다.
이 치열한 공기를 깬 것은 필의 벼락같은 홈런 한 방이었다. 4회 선두타자로 나선 필은 김광현의 145㎞ 빠른 공을 잡아 당겨 좌측 담장을 넘기는 비거리 110m짜리 홈런을 터뜨렸다. 이어 KIA는 5회 선두 김민우의 내야안타, 그리고 백용환의 중전안타로 무사 1,2루를 만들며 추가점을 낼 기회를 잡았다. 박찬호가 스리번트 강수에도 뜻을 이루지 못해 아웃카운트만 하나 올라갔지만 김주찬이 우중간 적시타를 쳐냈고 2사 1,3루에서 필의 삼진 때 공이 뒤로 빠지며 1점을 더 추가했다. 귀중한 추가점이었다. 김광현으로서는 경기가 꼬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반면 양현종은 5회 2사 1,2루 위기에서 이명기를 2루수 땅볼로 돌려세우고 0의 행진을 이어나갔다. KIA는 6회 선두 이범호의 좌중간 2루타를 시작, 1사 3루에서는 김민우가 좌전 적시타를 쳐내며 1점을 더 보탰다. 3루수 이대수가 전진수비를 하고 있다가 키를 넘겼다. 결국 김광현은 김민우를 마지막으로 이날 경기를 마무리했다. 5⅓이닝 4실점.
먼저 등을 보인 김광현을 뒤로 하고 양현종은 승승장구했다. 6회 대타 김연훈을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한 양현종은 이재원과 정의윤까지 외야를 허용하지 않으며 무실점 역투를 이어갔다. KIA는 7회 김주찬이 SK 두 번째 투수 박정배를 상대로 솔로포를 터뜨리며 사실상 승리 분위기를 만들어나간 끝에 귀중한 승리를 따냈다. 6이닝 동안 단 77개의 투구로 무실점을 기록한 양현종의 ‘4전5기’가 완성되는 순간이자 KIA가 5위 싸움에서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skullboy@osen.co.kr
[사진] 인천=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