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제대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 3년 전에 일어났던 트레이드에 대한 평가도 지금부터다.
지난 22일 사직구장에서 있었던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6번타자(1루수)로 출장한 오재일(29, 두산 베어스)은 만루홈런을 터뜨린 것을 포함해 3타수 2안타 1볼넷 4타점으로 맹활약해 팀의 6-5 승리를 이끌었다. 1회초 박세웅을 상대로 터뜨린 대포는 자신의 데뷔 첫 그랜드슬램이기도 했다. 스윙 후에도 몸 전체가 타석 안에 남아 있는 오재일 특유의 안정된 타격 폼을 볼 수 있었다. 이 만루홈런은 결승타였다.
오재일이 두산 유니폼을 입은 것은 3년 전이다. 2012년 7월 이성열과 맞트레이드되며 목동을 떠나 잠실로 옮긴 오재일은 두산이 손해 보는 트레이드를 했다는 주위 시선과도 싸워야 했다. 이성열은 정확성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잠실을 홈으로 쓰면서도 2010년 24홈런을 때린 거포였다. 반면 오재일도 파워는 인정 받았으나 트레이드 직전까지 통산 홈런이 6개인 유망주에 불과했다.

트레이드 후에도 이성열이 장타력을 더 많이 뽐내면서 실패한 트레이드라는 낙인이 일찌감치 찍혔던 적도 있었다. 이성열이 2013년 18홈런, 2014년 14홈런을 친 반면 오재일은 두산 유니폼을 입은 뒤 지난해까지 통산 10홈런에 그쳐 비난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그림이 다르다. 시즌 중 한화로 둥지를 올긴 이성열은 95경기에서 타율 2할5푼2리, 9홈런 36타점을 올렸다. 오재일은 출전 경기 수(57경기)가 훨씬 적지만 타율이 3할1리로 높고, 이성열보다 80타수를 덜 소화하고도 홈런은 3개 더 많다. 타점은 3점 뒤진 33타점이지만 단지 기회가 적었던 탓이다. 오재일은 타율과 안타, 홈런, 타점 부문에서 모두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다.
지금의 성과는 계속된 아픔을 딛고 맺은 열매다. 2013 한국시리즈 2차전 연장 13회초 오승환(당시 삼성)을 상대로 결승홈런을 쳐 이적 후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의 2014 시즌은 순탄치 않았다. 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미야자키 스프링캠프에서 펄펄 날던 오재일에 대해 "밀어치는 타격에도 완전히 눈을 뜬 것 같다"고 평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1루는 호르헤 칸투의 차지였다. 오재일은 한정된 기회 속에 타율 2할4푼2리, 3홈런에 그쳤다.
올해도 주전 도약이 예견되지는 않았다.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때부터 치고 나간 김재환이 주전 1루수로 낙점을 받았고, 오재일은 개막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다. 김재환은 개막전부터 결승홈런을 터뜨리며 가능성을 만개할 듯 보였다. 이에 비해 오재일은 6월까지 13경기밖에 나서지 못했고 홈런도 1개가 전부였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포수 마스크를 썼던 김재환이 1루 수비에서 불안을 드러내자 안정된 수비력을 갖춘 오재일이 기회를 얻었다. 뛰어난 타구 처리 능력과 수비 센스를 가진 오재일은 꾸준히 기용된 뒤부터 수비는 물론 공격에서도 발군의 타격을 과시했다. 본격적으로 선발 출장한 날이 많았던 후반기 들어 38경기에서 기록한 성적은 타율 3할3푼, 11홈런 31타점으로 누구와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다.
이제 부상을 당하고 돌아와도 자기 자리가 있다. 7월에 보였던 뜨거운 페이스는 옆구리 통증 때문에 쉰 뒤에도 식지 않았다. 시즌 초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삼진을 당해도 좋으니 자신 있게 하라고 했던 코칭스태프의 격려가 힘이 됐고, 이를 바탕으로 더욱 집중하자 가시적인 성과가 따라왔다. 오재일은 22일 경기 후 "주자가 있을 때 더 집중하려 노력하고, 팀 승리에 더 집중하고 있다. 집중의 결과가 좋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며 최근 활약의 비결을 밝혔다.
개인 첫 두 자릿수 홈런이라는 의미 있는 기록도 세운 올해엔 보여준 게 있으니 일시적인 부진이 찾아오더라도 기회를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주로 7, 8번 타순에서 의외의 한 방을 보여주던 파워히터였지만 이제 6번에서 승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증명했다. 앞으로는 중심타선에 배치돼도 이상할 것이 없다. 3년 전 비난의 화살을 받기도 했던 트레이드, 진정한 평가는 지금부터 해도 늦지 않다.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