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으로 아쉽게 시즌을 중도에 접었지만 강정호(28, 피츠버그)가 메이저리그(MLB) 첫 시즌에 남긴 가능성은 뚜렷했다. 한 단계 수준 높은 MLB 투수들의 공을 말 그대로 ‘잘 쳐내며’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성적 이상의 수확이라고 할 만한데 물론 보완점도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18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 도중 1루 주자 크리스 코글란의 거친 태클에 무릎 부상을 당한 강정호는 곧바로 수술대에 올라 올 시즌을 접었다. 이번주 퇴원할 예정이지만 앞으로 6~8개월 정도의 재활은 불가피하다. 남긴 성적이 뚜렷했기에 더 아쉬운 부상이었다. MLB 첫 시즌을 맞이한 강정호는 126경기에서 타율 2할8푼7리, 출루율 3할5푼5리, 장타율 0.461, OPS(출루율+장타율) 0.816, 15홈런, 58타점의 수준급 성적을 냈다.
수비에서는 100% 만족스러웠다고 보기는 어렵다. 본 포지션인 유격수(60경기)보다는 3루수(77경기) 출전이 더 많았다. 그러나 공격에서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선보였다. “수준이 떨어지는 KBO 리그 출신 선수가 MLB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시선을 깨끗하게 날려버렸다. 그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가 바로 빠른 공에 대한 대처 능력이다.

강정호는 KBO 리그에서 뛰던 당시 상대적으로 빠른 공을 던지는 외국인 투수들과의 승부에서 괜찮은 성적을 냈다. 그러나 MLB는 그 투수들보다도 더 빠른 공을 던지는 선수들이 많아 적응이 우려된 것도 사실이다. KBO 리그에서 가장 빠른 축에 속할 법한 93마일(150㎞)의 포심패스트볼은 MLB에서 그렇게 빠른 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레그킥에 대한 논란도 여기서 시작됐다. 레그킥으로는 빠른 공에 정확한 타이밍을 맞히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이는 강정호의 능력을 너무 평가절하한 것이었다. ‘브룩스베이스볼’에 의하면 강정호는 올 시즌 포심패스트볼 타율이 무려 4할4리에 이르렀으며 장타율은 0.702로 ‘빠른 공 킬러’의 면모를 선보였다. 만만하게 보여 빠른 공으로 승부했다가 호되게 당한 투수들이 많았다는 의미다. 15개의 홈런 중 8개가 포심패스트볼을 공략한 것이었다.
‘엄청나게 빠른 공’에도 강했다. MLB 최정상이었다.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강정호는 95마일(153㎞) 이상의 빠른 공을 30타수 이상 쳐낸 타자 중 타율이 가장 높았다. 무려 4할8푼7리였다. 2위 앤서니 렌던(워싱턴, 0.438)에 한참 앞섰다. 96마일(154.5㎞) 이상은 6할1푼9리, 97마일(156㎞) 이상도 5할3푼8리로 역시 1위였다. 기록만 놓고 본다면 강정호는 ‘빠른 공 승부를 피해야 할’ 대표적인 타자였으며 실제 시간이 갈수록 패스트볼 비중은 줄고 브레이킹볼(슬라이더·커브)의 비중이 늘어났다.
여러 변화구가 많지만 역시 투수는 빠른 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계속 변화구만 던질 수는 없는 상황에서 빠른 공 승부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빠른 공의 위력이 있어야 변화구의 위력도 돋보이게 된다. 앞으로 강정호에 대한 견제가 계속 심해지기는 하겠지만 기본적인 생존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로는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면 대처에 보완이 필요한 구종은 무엇이었을까. 강정호는 스플리터 계열에는 3할3푼3리, 커브는 2할5푼의 타율을 기록했다. 두 구종은 한국에서도 자주 봐왔던 구종. 포심패스트볼 이외 가장 많이 상대한 구종이었던 싱킹패스트볼 상대 타율도 2할7푼으로 나쁘지 않았다. 다만 싱커의 경우는 그만큼 땅볼도 많이 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포심, 싱커 다음으로 많이 들어온 슬라이더(.203)와 체인지업(.208) 대처가 다소 미흡했으며 한국에서는 완성도 높은 구종을 보기 어려운 컷패스트볼(.192)은 가장 낮은 타율을 기록했다. 좌완의 체인지업(.125), 우완의 커터(.174)는 가장 대처를 힘들어하는 구종이었으며 볼카운트가 몰리면 이런 구종들은 강정호를 더욱 괴롭혔다. 분명 구종들의 완성도는 KBO 리그에 비해 훨씬 높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재활이 우선이지만 보완점을 머릿속에 남겨둘 필요는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