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내용에 비해 승운이 따르지 않았던 SK 외국인 투수 메릴 켈리(27)가 서서히 불운을 떨쳐내고 있다. 외국인 선수들이 본격적인 재계약 시즌에 돌입한 가운데 켈리의 2년 연속 한국 무대 활약 가능성도 조금씩 엿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켈리는 24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과의 경기에서 5⅔이닝 동안 117개의 공을 던지며 9피안타(1피홈런) 1볼넷 5탈삼진 4실점을 기록했다. 5회까지는 무실점 투구내용이었으나 6회 박병호에게 투런을 맞는 등 4실점한 것은 아쉬웠다. 그러나 켈리로서는 크게 신경 쓸 필요까지는 없는 점수였다. 팀 타선이 6회까지만 10점을 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무난히 시즌 9승째를 기록했다.
켈리는 올 시즌 불운한 투수 중 하나로 손꼽혔다. 상대를 압도하는 힘은 아니지만 좋은 제구력, 그리고 홈 플레이트 앞에서 변화가 심한 공을 던지며 자신의 몫은 다했다. 28경기에서 16번의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 이 부문에서 팀 내 1위에 올라있기도 하다. 리그 전체로 따져도 열 손가락 정도에 뽑히는 성적이다. 체력도 검증이 됐다. 시즌 초반 손목 부상으로 잠시 로테이션을 떠나 있었음에도 171이닝을 던졌다.

그러나 승수 쌓기는 더뎠다. 불운 탓이었다. 유독 켈리가 나오면 타선이 터지지 않거나 경기가 꼬이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켈리는 8월 22일 NC전부터 9월 13일 NC전까지 5경기 중 4경기에서나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하고도 단 1승조차 따내지 못했다. 13일 NC전은 불운의 절정이었다. 스스로도 잘 던지고 모처럼 타선 지원도 받았지만 불펜이 대역전패를 헌납하며 승리를 날렸다.
하지만 최근에는 타선 지원 속에 2연승을 기록하며 10승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 켈리에 대한 구단 내부의 평가는 비교적 호의적이다. 올 시즌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해냈고 성적도 기대했던 만큼이 나오고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아직 확답하기는 이르지만 일단 켈리는 재계약 대상자에 올려두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새 외국인 투수 후보들과의 비교 절차는 불가피하겠지만 괜찮은 평가를 얻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사실 투자대비 가치로만 보면 켈리만한 투수도 없다. 켈리는 다른 투수들과는 달리 메이저리그 경력이 한 차례도 없다. 탬파베이의 두꺼운 투수 팜 시스템 속에서 번번이 승격에 실패한 마이너리거였다. 덕분에 몸값도 비싸지 않았다. 계약금 10만 달러, 연봉 25만 달러, 총액 35만 달러에 계약했다. 그런 켈리가 9승을 거뒀고 실제 공헌도는 10승 이상이다. 일상 생활에서도 튀는 행동이 없다. 선수들, 한국 문화에 거부감이 없다. 켈리에 대한 SK의 선택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고 봐야 한다.
지난해 트래비스 밴와트처럼 연봉은 대폭 상승될 가능성이 있으나 ‘검증된 10승 투수’치고는 비싸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경우 SK는 다른 외국인 선수들에 더 많은 예산을 쏟아 부을 수 있다. 켈리 또한 재계약 제의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규시즌 남은 경기, 혹은 SK가 포스트시즌에 갈 수 있다면 가을무대에서의 활약상 등이 마지막 키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