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참는다’ 정상호의 스티커와 희생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9.26 06: 58

25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와 삼성의 경기. 팽팽한 분위기로 흘러가던 경기는 4회 한 번 흐름이 끊겼다. SK 포수 정상호(33)의 부상 때문이었다. SK 선발 크리스 세든이 던진 공은 원바운드가 됐고 공교롭게도 튄 공은 블로킹을 하려던 정상호의 목 부위를 강타했다. 하필 보호대가 없는 부위였다.
극심한 고통을 호소한 정상호는 잠시 덕아웃에서 치료를 받았다. 호흡과 관련된 부위라 민감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나 교체는 없었다. 다시 그라운드로 나서 박석민을 삼진으로 유도하며 힘을 냈다. 덕아웃에서 연신 얼음찜질을 한 정상호였지만 그라운드에서는 내색을 하지 않고 9회 끝까지 경기를 책임졌다. 삼성 강타선을 3점으로 막아낸 정상호의 리드는 이날 SK의 승리를 이끈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포수는 극한 직업이다. 투수들의 공이 뒤로 빠뜨리지 않기 위해 무거운 장비를 쓰고 몸을 날린다. 파울타구는 공포다. 타구는 투구보다 더 빠를 수밖에 없는데 절정의 속도에서 포수들을 향해 날아든다. 포수들은 “안 맞아본 사람은 모른다”라고 고개를 젓는다. 그런 포수들 중에서도 정상호는 유독 파울타구에 자주 맞는 선수다. 정상호는 프로필상으로 187㎝에 100㎏다. 엄청난 거구다. 그러다보니 면적(?)이 넓을 수밖에 없어 더 많은 공을 맞는다는 것이 동료들의 안타까운 분석이다.

올 시즌도 상승세를 타려고 하면 그런 자잘한 부상이 정상호의 앞길을 막았다. 허벅지, 무릎, 어깨 등 타구들이 정상호를 약속이나 한 듯 겨냥했다. 정상호는 “꼭 보호대가 없는 곳으로 날아든다. 그게 포수들이 말하는 가장 큰 아이러니”라고 씁쓸하게 말한다. 가뜩이나 시즌 초반에는 몸에 맞는 공도 많았던 정상호다. 그 탓에 정상호의 몸은 성한 곳이 없다. 부상으로 모든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정상호가 100% 컨디션을 발휘하지 못하는 하나의 원인이 됐음은 분명했다.
24일 목동 넥센전에서도 아찔한 상황이 있었다. 9회 문광은과 호흡을 맞춘 정상호는 한 차례 사인이 맞지 않아 봉변을 당할 뻔했다. 변화구 사인을 냈는데, 문광은은 한가운데로 빠른 공을 던진 것. 만약 잡지 못했다면 가슴을 강타할 수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정상호는 “문광은의 시력이 조금 좋지 않고, 목동구장의 그 자리에 조명이 약해 사인이 잘 보이지 않는 측면이 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정상호는 “대전구장에서는 세 번이나 사인이 맞지 않았다. 아찔한 경기였다”라고 문광은과의 에피소드를 웃으며 떠올리면서 “안 보인다고 하니 어떡하나. 포수를 하면서 가슴에서 사인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라고 껄껄 웃었다. 답답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투수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일. 내키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포수의 숙명으로 생각하는 정상호의 마음가짐이 잘 드러난다.
포수가 ‘엄마’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프고, 속상하고, 때로는 화가 나도 자식들 앞에서는 참아야 한다. 정상호도 마찬가지다. 요즘 정상호는 손가락에 스티커를 붙이고 나온다. 좀 더 사인이 잘 전달되게 하려는 배려다. 그 배려 속에 24일 문광은은 9회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 희생 속에 25일 세든은 마음껏 원바운드 변화구를 던질 수 있었다. 그런 사소한 배려와 희생이 팀 승리를 만든다. SK의 2연승에 정상호의 지분이 적지 않은 이유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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