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태극마크를 다는 것만으로 자부심을 느끼던 시대는 지났다. 최고의 선수들을 뽑아 국가를 대표한다면, 이에 어울리는 환경도 조성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농구대표팀만은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김동광 감독이 지휘하는 남자농구대표팀은 중국 후난성 장사시에서 개최된 제 28회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에서 1차 예선을 통과했다. 1승 1패로 F조 4위를 기록 중인 대표팀은 27일(이하 한국시간) 레바논과의 결전을 앞두고 있다.
▲ 훈련구장도 겨우 구해...여전한 홈 텃세

현장에서 지켜본 대표팀의 고충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3일 연속 1차 예선전을 치른 한국은 26일 경기가 없었다. 보통 경기가 없는 날에는 오후에 체육관에서 가볍게 훈련을 한다. 그런데 한국은 25일 저녁까지도 연습구장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국제농구연맹(FIBA)이 26일은 공식적으로 모든 팀이 쉬는 날이라며 훈련스케줄을 전혀 잡지 않았던 것.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공식적인 항의가 잇따랐다. 그러자 FIBA는 25일 저녁 7시 부랴부랴 긴급회의를 가졌고, 자정에야 훈련스케줄을 통보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한국은 26일 오전 메인코트 옆 건물 보조경기장에서 훈련을 소화했다. 몸이 덜 풀리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가장 애매한 시간에 훈련을 했다. 코트도 시설이 좋지 않은 보조경기장을 줬다.
그렇다면 주최국 중국은 어떨까. 중국은 매일 오후 7시 30분 일정한 시간에 경기를 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운동하면 경기감각을 최고조로 만들 수 있다. 중국은 26일 오후에 공식경기가 열리는 메인코트에서 훈련했다. 한국 등 라이벌 국가에게는 내주지 않던 코트였다. 노골적인 차별이다.

▲ 하루에 한 끼...한식도시락이 구세주
한국 사람들은 타국에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운동선수라면 더 잘 먹어야 경기에서 힘을 낼 것이다. 우리 선수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농구대표팀에는 따로 조리사가 없다. 대표팀은 주최 측이 배정한 선수단 숙소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하고 있다. 모두 중국식이다. 맵고 짠 기름진 음식이 많아 컨디션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대표팀은 인근에 있는 유일한 한식당에서 도시락을 배달시켜 하루 한 끼를 해결하고 있다. 박한 선수단 단장은 “근처에 한국식당이 하나가 있다. 거기서 도시락을 시켜서 먹고 있다. 나머지는 한국에서 가져온 반찬 등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표팀 관계자는 “그나마 도시락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선수들이 그걸로 버틴다”고 했다.
음식문제는 컨디션과 직결된다. 축구대표팀의 경우 전용조리사가 있어 맛과 영양을 고려한 1급 식단을 내놓는다. 이들은 해외원정경기서 동행하며 직접 대표팀의 입맛을 챙긴다. 필요한 재료는 한국에서 가져가거나 현지서 공수한다. 007작전을 방불케 한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에서 조리장이 더위에 지친 선수들에게 ‘오이냉국’을 먹여 컨디션을 되찾게 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데 농구대표팀은 도시락에도 감지덕지하는 신세다.
기자도 중국출장 5일 째를 맞았다. 입에 맞는 중국음식 찾기가 힘들다. 더구나 매일 똑같은 식단이 더욱 입맛을 잃게 한다. 컵라면과 즉석밥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선수들은 라면을 먹고 경기에 뛸 수도 없으니 기자보다 훨씬 더 힘들 것이다.

▲ 국가대표 욕하는 건 ‘누워서 침 뱉기’
한국에서 민족의 명절 한가위가 한창이다. 친척들과 오랜만에 만나 담소를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다. 하지만 농구대표팀은 중국에서 ‘20년 만의 올림픽 진출’이라는 대업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들을 희생한지 오래다.
그런데 팬들의 무분별한 비난이 대표선수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특히 중국전 패배 후 특정선수 몇 명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어떤 선수가 빠지고 다른 선수가 뛰었다면 이겼을 것’이란 어처구니없는 논리다. 현재 국가대표팀이 어떠한 여건 속에서 뛰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상처가 되는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정당한 절차에 의해 한국을 대표해서 뽑힌 선수들이다. 이들을 욕하는 것은 곧 누워서 침 뱉는 격밖에 되지 않는다. 설령 국가대표팀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특정선수의 잘못이 아닌 한국농구의 고질적 문제다. 한 명을 마녀사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의 대표선수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조국을 대표해 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까방권’(까임 방지권)을 줘야 한다. 대표팀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닌 따뜻한 격려와 관심이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