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이 사람을 아십니까] 두산 클럽하우스 지킴이, 라커장 차승환 씨
OSEN 조인식 기자
발행 2015.09.28 05: 55

야구장의 주인공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입니다. 조연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코칭스태프, 혹은 프런트라고 답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겠죠. 그들이 조연인 건 맞지만, 우리가 다시 돌아봐야 할 사람들은 화려한 무대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에 매진하는 이들이 아닐까요. 매주 1회 잘 모르고 지나쳤던 그들의 이야기를 OSEN이 전해 드립니다. (편집자주)
야구장에서 선수들이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 인원은 생각보다 많다. 차승환 씨(28)는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벤치에 있지는 않지만 거기서 가장 가까운 클럽하우스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상당 부분은 두산 베어스와 함께하는 그의 손을 거친다. 선수들과 구단 직원들은 그런 차 씨를 '라커장'이라고 부른다.
차 씨가 야구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9년 전인 2006년이다. 차 씨는 "학교를 다닐 때 빼고는 계속 야구장에서 일했다. 2006년에 야구장 스태프 아르바이트에 지원해 관중석에서도 일을 해보고 볼보이로도 활동했다. 2013년에는 구장 관리 일도 했고, 2014년부터 지금 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커장'이라는 단어는 생소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이야기해달라고 하자 차 씨는 "오전 11시에 출근해 에어컨을 켜는 것으로 시작해 덕아웃과 냉장고에 물을 채워넣고 수건도 갖다놓고, 선수들 간식도 챙긴다. 라커 주변에 있는 감독실, 배팅연습장 등에 관련된 일들을 모두 한다"고 차근히 이야기했다.
이어 "이외에도 상대 팀에서 물이나 얼음 같은 것들을 갖다 달라고 하면 가져다 준다. 7회 정도에는 간식도 세팅한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정리를 하고 모든 선수가 다 나가면 문을 닫고 퇴근한다. 원정경기 때는 쉬고 홈경기에만 출근한다. 또 선수들이 개인훈련을 할 때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고, 스프링캠프를 가면 쉰다"고 덧붙였다. 오전 11시라는 것은 야간경기 기준. 오후 2시 경기인 경우엔 오전 8시까지 경기장으로 향한다.
거의 12시간 가까이 야구장에 머무르는 셈이다. 힘들 법도 하지만 차 씨는 "괜찮다. 워낙 야구를 좋아해서 경기가 늦게 끝나도 괜찮다. 계속 야구장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기회만 된다면 계속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TV에서만 보던 야구선수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건 야구팬들이 부러워할 일이다.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었는지 묻자 "선수들과 밥을 같이 먹기도 하고, 일상 생활을 함께한다. 지금도 가끔 신기할 때가 있다. (홍)성흔이 형을 비롯해 모든 선수들이 잘 해준다"고 말한 차 씨는 "2012년에 볼보이 할 때 끝내기가 나왔는데, 공을 주워서 끝내기를 친 선수에게 준 일이 있다. 그 경기는 스캇 프록터의 첫 승 경기였는데, 나중에 프록터가 그 공을 가져갔다고 하더라"며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차 씨도 언제까지 야구장에만 있을 수는 없다. "다음 시즌에도 계속하자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이 일을 하고 싶지만 다른 직업도 조금씩 알아보고는 있다"는 차 씨는 "언제가 마지막 시즌이 될지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만두기 전에 우승을 해보고 싶다. 그러지 못하고 야구장을 떠나게 되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두산 선수들과 우승을 함께 경험하고 싶은 마음때문에 계속 일을 하는 부분도 조금은 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앞서 밝혔듯 차 씨의 소원은 야구장에 오래 머무는 것이다. 좀 더 다양한 직업에 대한 이해와 지원이 확대된다면 실현 가능한 꿈이다. "메이저리그에는 클럽하우스 매니저라는 직업이 따로 있다. 미국이나 일본을 보면 부럽기도 한데, 우리나라도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좀 더 인정받게 된다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야구장에 더 오래 남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차 씨의 바람이 그저 바람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한국야구도 지금보다 발전한 모습일 것이다. /nick@osen.co.kr
[사진] 두산 베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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