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고센터를 가리는 거인대결에서 안드레이 블라치(211cm, 29, 저장 플라잉타이거스)가 웃었다.
필리핀은 28일 오후(이하 한국시간) 중국 후난성 장사시 다윤시티아레나에서 벌어진 2015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 E조 결선 2차전에서 챔피언 이란을 87-73으로 꺾었다. 필리핀은 3승 1패를 기록하며 조 선두로 올라섰다. 예선포함 4연승을 달리던 이란(결선 3승 1패)은 대회 첫 패배를 기록했다.
결선 최고의 빅매치였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떨어지는 E조에서 이란과 필리핀이 최강자다. 두 팀 중 승자가 조 수위를 차지하는 형국. 양 팀의 기둥인 안드레이 블라치(필리핀) 대 하메드 하다디(218cm, 30, 이란)의 센터대결이 중요 매치업이었다. NBA출신 두 거인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전날 블라치는 일본전에서 발목을 다쳤으나 심각하지 않았다. 그는 주전센터로 출전해 하다디와 맞붙었다. 블라치는 1쿼터 중반 하다디의 수비를 제치고 화려한 드리블에 이은 한 손 레이업슛을 올려놨다. 그러자 이번에는 하다디가 블라치를 앞에 두고 레이업슛을 성공했다. 다시 공을 잡은 블라치는 림으로 돌진해 자유투를 얻어냈다. 하다디 역시 적극적으로 림을 노렸다. 두 선수의 자존심 대결이 치열했다.
필리핀은 가드들의 최상의 컨디션을 자랑했다. 제이슨 윌리엄의 3점슛이 터진 필리핀은 17-11로 기선을 잡았다. 이란은 벤치가 훨씬 두터웠다. 식스맨포워드 모하메드 잠시디는 벤치에서 나와 폭발적인 득점력을 자랑했다. 이란은 25-22로 역전에 성공하며 1쿼터를 마쳤다.
관건은 체력이었다. 블라치는 20분 이상 뛸 체력이 없었다. 후반을 위해 2쿼터 대부분을 벤치에서 지켰다. 블라치가 없을 때 필리핀은 골밑을 지켜줄 선수가 없었다. 서장훈과 자웅을 겨뤘던 노장센터 파울라시 타울라바(42, 208cm)가 출전했다. 그는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하다디의 상대는 아니었다.
이란은 경기감각이 문제였다. 지난 4경기서 너무 쉬운 상대를 대파하다보니 주전들이 많이 뛸 필요가 없었다. 치열하게 싸울 필요가 없다보니 전투력이 무뎌져 있었다. 이란은 필리핀전이 사실상 아시아선수권 첫 경기나 다름없었다. 1쿼터 고전했던 이란은 2쿼터부터 제 모습을 찾았다. 에이스 니카 바라미가 폭발한 이란은 전반전을 43-37로 리드했다.
블라치는 NBA출신다운 화려한 기술을 뽐냈다. 캄라니의 슛을 쳐낸 블라치는 직접 드리블을 해서 하다디를 뚫고 들어가 파울을 얻었다. 211cm의 거구지만 포인트가드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 기술이었다. 기존 경기에서 보여준 허술한 모습은 없었다. 블라치는 영리하게 하다디의 공을 가로챘다. 슈터들의 외곽슛이 폭발한 필리핀은 4쿼터 중반 77-67로 다시 전세를 뒤집었다.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던 이란도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란 덕 바우만 감독은 욕설을 퍼부으며 심판판정에 항의했다. 4쿼터 종료 4분을 남기고 블록슛을 시도하던 하다디에게 네 번째 파울이 지적됐다. 그러자 하다디는 판정에 불복해 심판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결국 하다디는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블라치는 18점, 7리바운드, 4스틸, 2블록슛을 기록하며 하다디(10점, 7리바운드, 5파울 퇴장)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절대강자로 평가받던 이란이 일격을 당하며 아시아선수권 판도는 요동치게 됐다. 한국은 F조 2위로 8강 및 준결승에 가더라도 이란을 피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졌다. 필리핀의 선전으로 한국도 유리한 상황이 됐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장사(중국)=서정환 기자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