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KBO리그는 어느 때보다 극심한 선발투수난을 겪고 있다. 규정이닝을 채운 선발투수가 20명인데, 이중 13명이 외국인투수다. 토종 선발투수는 씨가 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대 초중반 토종 선발투수 중 규정이닝을 소화한 이가 한 명도 없다. 20대 후반, 혹은 30대 베테랑 선발투수들이 활약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렇게 선발투수의 가치가 금값이 된 상황에서, 2013시즌을 앞두고 내린 LG와 우규민의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2013 스프링캠프에서 LG의 첫 번째 과제는 토종 선발투수 3명을 만드는 것이었다. 레다메스 리즈와 벤자민 주키치 외에는 풀타임을 뛰어본 선발투수가 전무했다. 불펜투수로 활약해온 우규민을 포함해 신재웅, 신정락, 임찬규 등이 선발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류제국이 시즌 중반 합류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토종 선발투수 3명으로 버텨야만 했다.
우규민은 2010년과 2011년 경찰청에서 군복무를 하면서 선발투수로 나섰다. 스스로 내린 결단이었다. 우규민은 “군복무를 하는 동안 ‘우규민=불펜투수’라는 공식을 깨뜨려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2년이란 시간을 그냥 허비할 수는 없었다. 부담이 적은 퓨처스리그에서 뛰는 만큼, 내 자신에게 변화를 주고 싶었다. 경찰청 유승안 감독님께 요청했고, 감독님께서 흔쾌히 받아들여주셨다”며 “물론 선발 등판한다고 선발투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구종도 늘리고 타이밍 싸움에도 신경 썼다. 좌타자에 대비해 체인지업을 연마했고, 투구 모션을 통해 타이밍을 빼앗는 것도 해봤다. 경찰청에서 보낸 2년은 내겐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우규민은 2011시즌 퓨처스리그에서 15승 무패 평균자책점 2.34로 괴력을 발휘했다.

퓨처스리그 활약은 1군 무대서도 이어졌다. 군전역 후 첫 해였던 2012시즌, 뜻하지 않게 선발투수로 나서게 됐다. 당시 불펜에서 활약하던 우규민은 2012년 6월 15일 KIA전 도중 갑작스럽게 다음날 선발 등판 통보를 받았다. 선발 등판 예정이었던 주키치가 급성장염으로 마운드에 오를 수 없게 되면서 우규민의 1군 무대 선발투수 데뷔전이 만들어진 것이다. 기대보다는 우려가 많았으나, 우규민은 7이닝 4피안타 1볼넷 1실점(비자책)으로 선발승에 성공했다. 이후 두 차례 더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랐고, 2013시즌 선발진 후보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그 다음부터는 탄탄대로였다. 2013시즌 30경기 147⅓이닝을 소화하며 10승 8패 평균자책점 3.91. 2014시즌에는 29경기 153⅔이닝 동안 11승 5패 평균자책점 4.04를 찍었다. LG 또한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우규민은 LG의 새로운 프랜차이즈 스타가 됐고, LG는 지키는 야구를 통해 강팀으로 거듭났다. 지난겨울 우규민은 좌측 고관절 수술로 5월 중순에 팀에 합류했다. 그럼에도 올 시즌 24경기 144⅔이닝을 소화했고, 10승 9패 평균자책점 3.55로 맹활약 중이다.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에 성공, LG 프랜차이즈에서 4명(하기룡·정상흠·김용수·봉중근)밖에 이루지 못한 대기록을 달성했다.
우규민의 성공에는 변화를 통한 진화가 자리하고 있다. 우규민은 매년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섰고, 진화하려했다. 구위로 상대 타자를 압도하는 투수가 아닌 만큼, 전력분석에도 적극적이다. 선발투수로 커리어를 시작한 2013시즌, 우규민은 투구 모션을 통해 타이밍을 빼앗아갔다. 타자가 투수의 투구폼에 맞춰 ‘하나 둘 셋’ 후 배트를 휘두른다면, 우규민을 상대할 때는 짧게는 ‘하나’, 길게는 ‘다섯’에서 배트가 나가야한다. 어느 타이밍에서 공을 던질지 예측할 수가 없다. 국가대표 출신의 한 베테랑 타자는 “우규민과 상대할 때는 머리가 아프다. 구종도 다양하고 타이밍도 매번 다르기 때문에 너무 힘들다. 게다가 제구도 좋은 편이라 볼넷으로 나갈 수도 없다. 집중력을 잃으면 그냥 당해버린다”고 혀를 내두른다. 2014시즌부터는 순간적으로 팔 높이에 변화를 줬다. 스리쿼터로 모든 구종을 자유롭게 던졌다.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기습공격을 통해 스탠딩 삼진을 만들어냈다.
2015시즌에 앞서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목표를 설정했다.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과 볼넷 20개 이하를 바라봤다. KBO리그 통산 100이닝 이상·볼넷 20개 이하를 기록한 투수는 세 명(선동열·정명원·전승남) 뿐. 그런데 셋 모두 선발투수가 아닌 불펜투수로서 기록을 이뤘다. 선발투수는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것은 물론, 한 경기에 두 세 차례 같은 타자와 마주한다. 때로는 전략적으로 볼넷을 내줘야할 때도 있다. 양상문 감독은 “규민이를 보고 있으면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고 저렇게 타자를 잡지’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만큼 타자의 생각을 읽는데 능하다”며 “볼넷 20개 이하도 쉽게 나오기 힘든 발상 아닌가. 그것도 선발투수가 그런 목표를 잡는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고 말했다.
올 시즌 우규민은 볼넷 17개를 기록 중이다. 정규시즌 종료에 앞서 한 경기 더 선발 등판할 수 있는데, 이변이 없는 한 볼넷 20개 이하를 이루게 된다. 우규민의 경기당 평균 볼넷은 1.06개(9이닝 기준). 리그 전체 선발투수 중 최소 1위이며 2위 윤성환과는 무려 0.38개나 차이난다. 우규민은 “볼넷을 많이 내주지 않으면 평균자책점도 내려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야수들도 내가 나오면 안정된 투구를 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었다”면서 “지금까지 기록을 보면 한 시즌 볼넷 30개를 좀 넘었었다. 좀 더 나은 투구를 할 경우, 20개까지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이 목표를 설정했다. 말도 안 되는 기록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해낼 자신이 있었다”고 밝혔다.
우규민의 말대로 적은 볼넷은 평균자책점 떨어뜨렸다. 올 시즌 우규민의 평균자책점 3.55는 리그 전체 선발투수 중 5위, 토종 선발투수 2위다. 우규민은 2013시즌 선발 전환 후 3년 동안 평균자책점 3.73을 올리고 있는데, 이는 토종 선발투수 3위에 해당된다. 우규민보다 앞에 있는 투수는 양현종(3.36)과 이재학(3.69) 뿐이다.
우규민은 새 목표에 대해 “아직은 정하지 않았다. 일단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을 했으니까 ‘선발투수 우규민’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선발투수로 인정받을 것 같다”며 “다른 팀 선수, 다른 팀 코칭스태프께서도 우규민은 괜찮은 선발투수라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동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룰 수 있었다. 선발투수는 아무리 잘 해도 동료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 내 자신에게도 뿌듯하지만 그동안 도와준 동료들에게도 정말 고맙다”고 전했다.
한편 우규민은 시즌 후 열리는 국제대회인 프리미어 12 참가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1차 엔트리에는 이름을 올려놓은 상황. 우규민은 “올해 팔 상태가 정말 좋다. 지난 몇 년보다 훨씬 좋다”며 “지난 겨울 수술 후 재활을 하면서 상체 운동을 많이 했는데 효과를 보는 것 같다. 시즌 후 대회에 참가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몸 상태다”며 2006년 아시안게임 이후 9년만에 태극마크를 달기를 바랐다. 우규민은 올 시즌 최고의 외국인타자 2명을 무안타로 묶고 있다. NC 테임즈는 우규민에게 4타수 무안타, 삼성 나바로도 우규민에게 4타수 무안타다. SK 브라운 또한 6타수 무안타로 우규민에게 고전 중이다. 사이드암 투수가 생소한 외국인타자에게 더 강한 우규민이다. / drjose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