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수는 문제가 없다고 일찌감치 ‘OK’ 사인을 냈다. 한 선수는 자원등판 하겠다고 나섰다. 국내 선수들도 아닌, 두 외국인 투수들이 팀을 위해 보여준 헌신적인 모습에 많은 이들이 힘을 냈다. 메릴 켈리(27)와 크리스 세든(32)이 실력과 인성 모두에서 SK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냈다.
SK는 3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NC와의 경기에서 4-3으로 역전승을 거두고 간신히 5위 탈락을 막았다. 6위 KIA에 1.5경기를 앞선 SK는 KIA가 남은 3경기에서 모두 이기지 않는 이상 막차로 포스트시즌에 합류한다. 전반적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시즌이기는 했으나 만회할 마지막 기회는 잡을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1-3으로 뒤진 7회 김성현의 2타점 적시타, 8회 나주환의 역전 솔로포가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켈리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승리였다. 선발 박종훈이 6회 박민우에게 적시타를 맞고 3점째를 실점하자 SK는 3일 휴식 후 불펜에서 몸을 푼 켈리를 투입시켜 버티기에 들어갔다. 전 경기 투구수가 적기는 했지만 그래도 3일 휴식 후 등판이라 체력적으로 부담스러울 수 있었던 것은 사실. 그러나 켈리는 3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역전의 발판을 놨다.

그리고 이날은 세든도 대기 의사를 밝혔다. 세든은 지난 9월 30일 LG전 등판 이후 이틀을 쉰 상황이었다. 그러나 팀의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등판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비록 7회 브라운이 대타로 투입되며 세든의 등판은 규정상 자연스레 무산됐지만 구단 관계자들은 “세든의 마음씨가 참 고마웠다”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날 경기 뿐만 아니었다. 두 선수는 SK가 8위에서 5위까지 뛰어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인 힘을 제공했다. 켈리는 시즌 마지막 네 차례의 선발등판에서 모두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하며 3승을 쓸어 담았다. 그리고 3일 경기에서는 구원승을 챙기며 시즌을 11승10패 평균자책점 4.13으로 마무리했다. “두 자릿수 승수만 거둬도 성공”이라던 팀의 기대치를 초과달성했다.팀 내 투수 중 최다이닝(181이닝)을 던지기도 했다.
트래비스 밴와트의 갑작스런 부상 공백으로 인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세든도 역투를 거듭했다. 초반에는 구위가 살아나지 않으며 고전했으나 마지막 5경기에서 모두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5연승을 내달렸다. 초반 난조로 평균자책점(4.99)은 조금 높았지만 어쨌든 14경기에서 7승을 기록했다. 대체 외국인 선수로는 준수한 활약이었다. 퇴출 위기까지 갔다 살아나는 등 고비를 이겨낸 호투라 SK는 큰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런 두 선수가 9월 이후 합작한 승수만 해도 무려 9승이다. 두 선수가 없는 SK의 시즌 막판 분전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가격대비 효율로도 최고다. 메이저리그 경력이 없는 켈리는 올해 연봉이 계약금 포함 35만 달러다. 대체 선수로 들어온 세든은 15만 달러에 계약했다. 합쳐 50만 달러인데 시즌 막판 중요했던 승리를 포함해 시즌 18승을 합작한 것이다. 5억 원 남짓 되는 투자로 최고의 효율을 뽑아냈다고 볼 수 있다.
켈리는 올 시즌에 대해 “물론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은 시즌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좀 더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래도 마무리를 잘할 수 있어 기쁘다”라고 웃었다. 세든은 “개인 성적보다는 중요한 경기에서 팀에 승리를 도와 기쁠 뿐이다. 나 또한 이제 내 자신의 능력을 믿고 던지고 있다”라고 가을을 갈망했다. SK의 승부수가 포스트시즌에도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