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물러날 수 없는 벼랑 끝에서 생존에 성공했다. 가을잔치의 단골손님 두산 베어스가 포스트시즌 무대에 복귀한다.
두산은 지난 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9-0 완승을 거두며 정규시즌을 3위로 마감했다. 포스트시즌 진출은 일찌감치 확정했지만,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피해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승리라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 자체가 걸렸던 KIA가 좀 더 큰 부담을 갖고 있었겠지만, 부담감을 이겨낸 두산 선수들의 집중력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김태형 감독 역시 "1회 수비 움직임을 보고 이겼다 싶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1회초 두산은 2루수 오재원의 민첩한 몸놀림으로 첫 아웃카운트를 잡았고, 좌익수 김현수도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로 김원섭의 타구를 잡아냈다. 경기 초반부터 다들 몸이 가벼워 보였고, 김 감독에게도 좋은 느낌이 전달됐다.

선발 이현호의 투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은 "현호도 1~2회를 지나면서 자신감 있는 피칭을 보여줘 됐다 싶었다"라고 평했다. 팀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경기 선발로 내정됐으니 걱정이 될 법도 했지만 이현호는 이날 출근해 클럽하우스로 오던 길에서부터 활짝 웃는 표정이었다. 부담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올해가 첫 풀타임 시즌이라 아직 가을잔치 경험은 없지만 위축되지 않는 성격을 지녀 포스트시즌 활약도 기대케 하고 있다. 정규시즌에 보여준 만큼만 해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
선수단 전체가 웃고 떠들며 긴장감도 풀었다. 공교롭게 4일은 코칭스태프 최고참인 유지훤 수석코치의 생일이었는데, 경기 전 선수들은 라커룸 안에서 박수를 치고 축하하며 떠들썩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경기를 앞두고 긴장감 해소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시즌 전체로 보면 큰 위기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온 것이 3위 달성의 원동력이었다. "9월 들어 팀이 많이 어려웠다"던 김 감독은 3위 넥센과의 승차가 3경기로 벌어지자 선수들을 모아 편하게 4위를 한다고 생각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부담을 벗어던진 선수들이 이후 힘을 냈고, 3위 탈환에 성공했다.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은 점을 박수 쳐주고 싶다"며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돌이켜보면 숱한 위기들을 헤쳐왔다. 초반에는 티가 나지 않았지만 잭 루츠, 더스틴 니퍼트의 부상과 부진은 이번 시즌을 돌아볼 때 두고두고 아쉬운 점이 될 것이다. 또한 5월에 셋업맨을 잃은 것도 뼈아팠다. 김 감독도 "중간에 계속 외국인 선수들이 아프고 부진했던 것, 그리고 김강률의 부상이 고비였다"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시즌 초부터 이어진 이러한 악재들을 넘은 뒤 9월에도 위기가 왔지만 극복했다. "6연패 뒤 1승을 하고 다시 2연패를 당했을 때도 정말 고비라고 생각했다. 힘들다는 생각도 했고, 연패를 하니 정말 고비라는 게 피부에 와닿았다. 그래도 차곡차곡 승수를 쌓으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며 김 감독은 한 시즌을 천천히 복기했다.
어려움 없이 144경기를 치른 것이 아니기에 김 감독은 앞날도 괜찮을 것이라 낙관하고 있다. 9월 평균자책점 8.89로 부진한 유희관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다. "희관이가 시즌 후반에 조금 좋지 않았는데 마지막 경기에 불펜 대기하겠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성격적으로 (포스트시즌에) 잘 적응할 것이다"는 것이 김 감독의 생각이다. 2년 전 가을잔치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유희관이기에 포스트시즌에 대한 적응은 특별히 필요하지 않다. 본연의 모습만 찾으면 된다.
준플레이오프부터 소화하면서 우승을 따내기가 쉽지 않은 것은 누구나 알지만, 그래도 가을의 단골손님인 두산이라 약간의 희망은 품어볼 수 있다. 정규시즌 챔피언을 꺾고 한국시리즈 트로피를 차지한 마지막 팀도, 2010년대 절대강자 삼성의 통합 4연패 과정에서 유일하게 삼성을 코너로 몰아봤던 팀도 모두 두산이다. 위기에 강하고 포스트시즌 경험도 풍부하다. 서늘해진 날씨는 두산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