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이 끝나면 외국인선수들은 하루 이틀 뒤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간다. 타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몸과 마음이 지친 외국인선수들이 곧잘 겪는 게 향수병이다.
올 시즌 한화에서 뛴 외국인선수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내·딸과 함께 한 미치 탈보트나 홀로 지낸 제이크 폭스는 5일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여기에 또 다른 외국인선수 에스밀 로저스(30) 역시 고향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사실 로저스는 다른 선수들보다 며칠 더 한국에 있을 뻔했다.
이유는 어머니 때문이었다. 로저스의 어머니 바스케즈 여사가 최근 어깨가 좋지 않은데 도미니카공화국보다 의료시설과 환경이 발달돼 있는 국내 병원에서 치료받고 떠나려 한 것이다. 효심이 깊은 로저스도 어머니의 뜻을 헤아려 더 있고 싶어했지만 예정된 일정으로 어머니와 함께 5일 고향에 돌아갔다.

로저스는 지난 8월초 한국에 올 때부터 어머니 바스케즈 여사와 함께 왔다. 두 달 동안 어머니가 항상 그의 곁을 따라다니며 아들에게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낯선 나라에 온 로저스도 늘 곁에 어머니가 있어 심리적 안정은 물론 계속 도미니카 음식을 먹으면서 힘을 낼 수 있었다.
한화 구단 관계자는 "로저스를 보면 효심이 깊다. 어머니 생각하는 마음을 보면 효자가 따로 없다. 마운드 위에서는 강해 보이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순한 양이다"고 표현했다. 지난달 26일 대전 홈경기를 앞두고는 바스케즈 여사가 직접 시구를 했고, 로저스가 어머니의 공을 받은 뒤 마운드로 달려가 포옹을 나누기도 했다.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로저스는 KBO리그를 지배했다. 지난 8월 공식 몸값 70만 달러를 받고 한화 유니폼을 입은 로저스는 10경기 6승2패 평균자책점 2.97 탈삼진 60개로 위력을 떨쳤다. 75⅔이닝을 소화하며 3번의 완봉승과 4번의 완투로 이닝이터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비록 한화는 8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가을 야구의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로저스의 힘이 컸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워낙 강렬한 투구를 했기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나아가 한화 팬들은 내년 시즌에도 로저스를 싶어한다. 로저스 역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한화 팬들의 뜨거운 환호에 눈물을 훔칠 정도로 정이 많이 들었다.
한화 구단에서도 로저스의 재계약을 위해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할 각오다. 로저스 역시 "사람의 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한국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한국을 좋아하기 때문에 로저스의 마음도 흘를 법도 하다. 어느새 한국에 적응한 로저스와 그의 어머니 바스케즈 여사를 내년에도 볼 수 있을까.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