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투수가 부족했다".
한화 김성근 감독이 시즌을 마친 뒤 가장 많이 언급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요인이다. 올해 한화는 팀 평균자책점이 9위(5.11)에 그쳤는데 구원이 7위(4.97)인 반면 선발이 9위(5.25)에 머문 것이 뼈아팠다. 김성근 감독의 말대로 선발투수의 부진이 가을야구 탈락의 결정적인 이유였다.
김 감독은 "선발투수가 부족했고, 뒤에 던지는 투수들에게 굉장히 부담됐다. 선발투수 5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던 팀은 우리밖에 없었다. 최소한 5명은 있어야 했는데 외국인 투수도 안 좋았고, 배영수·송은범·이태양까지 제대로 못 던졌다. 6회 넘은 경기가 얼마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감독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태양이 팔꿈치 수술로 시즌 아웃되고, 배영수와 송은범이 부진에 빠진 바람에 한화에 선발투수 5명이 부족했던 건 맞다. 그런데 이것은 한화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다. 삼성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이 모두 선발투수 부족에 시달렸다. 삼성만 5명이 20경기 이상 선발등판했을 뿐 그 다음으로 SK와 LG가 4명으로 뒤를 이었을 뿐이다.
대부분 팀들이 한화처럼 선발투수 부족에 시달렸지만 한화처럼 불펜 부담이 크지는 않았다. 20경기 이상 선발투수가 유희관·장원준 2명으로 가장 적었던 두산은 허준혁·진야곱·이현호 등 대체 선발을 발굴하며 더스틴 니퍼트의 빈자리를 메워 3위로 마쳤다. 넥센도 밴헤켄·피어밴드 2명만이 고정 선발이었지만 베테랑 송신영부터 신인 김택형에 트레이드 자원 양훈으로 선발 빈자리를 채웠다.
KIA는 선발난 속에서도 임준혁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였으며 문경찬·박정수 같은 신인들에게도 기회를 줬다. NC 역시 이태양을 발굴하며 고참 투수 손민한과 박명환에게도 선발 기회를 주며 돌파구를 찾았다. 삼성을 빼면 거의 대부분 팀들이 선발투수가 부족했지만, 한화처럼 불펜에 의존하기보다 대체 선발을 찾았다. 한화는 안영명·송창식·김민우 등 구원투수들만 끌어 썼다.
더군다나 한화는 선발투수들이 크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한화는 3실점 이하 선발투수가 6회를 마치기 전 교체되는 '퀵후크'가 69차례로 리그 최다였다. 5회가 끝나기 전으로 기준을 낮춰도 44차례로 최다. 시즌 초반부터 대량 실점하지 않은 선발투수를 한 박자 빨리 교체했는데 결국 시즌이 갈수록 불펜 부담으로 전해졌다. 반대로 선발투수는 길게 던져볼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투수 출신 야구인은 "한화 선발투수들은 몇 점 주지 않았는데도 벤치 눈치를 본다. 언제 교체될지 모르는데 투수는 불안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배영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인내심 갖고 선발투수가 실점을 허용해도 기다렸지만 김성근 감독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배영수에게 가장 어려운 점이었을 것이다"고 했다. 에스밀 로저스급이 아니면 인정을 받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한화는 잘 던지는 선발투수면 최대한 당겨썼다. 4일 휴식 등판이 리그 최다 43경기였다. 3일 이하 휴식도 6경기 포함돼 있다. 이 43경기에서 한화는 13승30패에 그쳤다. 로저스(3승2패·4.43)처럼 4일 휴식에도 흔들림 없는 투수가 있지만 미치 탈보트(2승6패·6.85)처럼 내구성이 떨어지는 투수에게는 무리였다. 김민우(2패·10.80) 안영명(1패·17.18) 송은범(2패·11.25) 등도 4일 이하 휴식이 안 좋았다. 송창식과 김민우는 수시로 선발과 구원을 오갔다. 선발로 쓸 수 있는 양훈은 트레이드 카드로 일찌감치 내보냈다.
한화에 선발투수가 부족했다고 탓할 게 아니라 선발투수의 활용법이 적절했는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