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의 틈’ 느슨했던 넥센의 가을 비극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10.15 06: 52

점수는 크게 벌어진 채 종반으로 향하고 있었다. 상대팀 두산이 총력전을 펼칠 기미를 보인 것도 아니었다. 무난히 넥센이 이기고 시리즈가 5차전으로 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한 번 틀어진 경기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양상으로 흘러갔고 끝내 넥센의 가을야구 문을 닫게 만들었다. 통계로 분석하면 0.8%의 틈이 비극을 만들었다.
넥센은 14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9-11의 믿을 수 없는 역전패를 당했다. 이로써 시리즈 전적이 1승3패가 된 넥센은 시동까지 걸어놨던 잠실행 버스를 타지 못했다. 충격적이고, 허무한 패배였다. 9-2로 앞서고 있던 넥센은 중반 이후 야금야금 추격을 허용하더니 9회 마지막 공격에서 대거 6점을 내주고 무너졌다. 염경엽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경기장, 그리고 TV를 통해 지켜보던 모든 팬들은 넥센의 승리를 예감하고 있었다. 두산 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KBO(한국야구위원회) 공식 기록업체인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넥센의 순간 승리 확률은 계속 올라가 한 때 99.2%의 어마어마한 수치를 찍었다. 실제 KBO 포스트시즌 역사에서도 7점차 경기를 뒤집은 팀은 없었다. 하지만 넥센의 방심, 그리고 두산의 투지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3회까지 점수는 2-2였다. 양팀의 승리 확률도 50% 사이를 두고 맴돌았다. 그런 넥센이 승기를 잡기 시작한 것은 4회였다. 박동원의 2타점 적시타가 터졌을 때 넥센의 승리 확률은 78%로 올랐다. 넥센이 이겼다면 박동원의 이 안타는 승부에 영향을 미친 가장 결정적인 한 방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고종욱의 타구를 김재호가 잡아내지 못하자 승리 확률은 85.1%가 됐다.
5회 박병호가 솔로포를 쳐 점수차를 4점으로 벌릴 때의 승리 확률은 93.3%, 6회 박병호가 우전 적시타를 쳤을 때는 95.3%가 됐다. 정점은 8회말 1루 주자 고종욱이 발로 2루를 훔쳤을 때였다. 승리 확률은 99.2%가 됐다. 그리고 넥센은 9-5로 앞선 상황에서 9회를 맞이했다. 한현희도 있었고 조상우도 있었다. 두산은 아웃카운트 세 개에 적어도 4점을 뽑아야 했다.
그러나 두산은 저력을 발휘했다. 9회 1사에서 마운드에 올라온 조상우를 괴롭히더니 김현수가 적시타를 터뜨리며 1점차까지 따라 붙었다. 넥센의 승리확률은 62.8%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양의지가 역전 적시타를 터뜨리는 순간, 넥센의 승리확률은 11.7%까지 추락했다. 이제는 두산이 승기를 잡은 것이다. 그리고 두산은 이 기세를 놓치지 않고 승리를 확정지었다.
7·8회부터 뭔가 느슨함이 감돌았던 넥센이었다. 0.8%의 미비한 확률이라도 방심은 그 틈을 더 벌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여실히 확인됐다. 9-2가 되는 순간, 넥센 타선의 집중력은 떨어지는 듯 보였다. 끈질긴 승부가 줄어들었다. 추가점이 없었다는 것은 하나의 증거다. 벤치도 5차전을 생각했다. 3일을 쉬고 등판한 양훈을 9-2로 앞선 7회에도 밀어붙이다 2점을 내줬다. 물론 그 상황에서 2점은 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솔직히 그 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야구의 신은 “좀 더 기민한 투수교체가 필요했다”라고 넥센의 패착을 진단하고 있다.
8회에도 1점을 내준 넥센은 9회 조상우가 힘없이 무너지며 대역전패를 당했다. 모두 위기에 몰렸을 때 투수가 교체되는 등 선제적인 방어에 실패했다는 결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경기였다. “5차전에 대비해 되도록 조상우를 아끼고 싶다”라는 무의식적인 벤치의 움직임도 독이 됐다. 벼랑 끝에 몰린 팀이 내일을 생각하다 벼랑으로 밀린 셈이다. “탈락 위기에 몰린 팀은 어떤 상황에서도 방심하지 않고 9회 끝까지 최선을 전력을 밀어 넣어야 한다”라는 교훈을 남긴 경기였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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