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 정상격돌’ 컵스와 메츠 리빌딩에는 철학이 있다
OSEN 윤세호 기자
발행 2015.10.17 06: 58

암흑기 청산에 성공한 시카고 컵스와 뉴욕 메츠가 리그 최정상에서 만났다. 컵스는 내셔널리그 최고 명문 세인트루이스를 디비전시리즈에서 꺾었고, 메츠는 가장 돈을 많이 쓰는 다저스를 잡았다. 이제 컵스는 7년만, 메츠는 9년만에 오른 포스트시즌에서 월드시리즈 진출까지 노린다.
사실 올 시즌에 앞서 컵스와 메츠의 약진을 예상한 사람을 많지 않았다. 두 팀 모두 원활하게 리빌딩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우승전력을 갖추기에는 1, 2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컵스는 정규시즌 성적 97승 65패, 리그 전체에서 세 번째로 좋은 성적을 내면서 포스트시즌에 올랐다. 메츠는 90승 72패로 워싱턴을 제치고 지구우승을 차지했다. 
주목할 부분은 양 팀 모두 젊은 선수들이 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게 태오 엡스타인(41) 컵스 사장, 샌디 앨더슨(68) 메츠 단장의 철저한 계획 속에서 이뤄졌다. 엡스타인 사장과 앨더슨 단장이 지난 몇 년 동안 어떻게 팀을 올려놓았는지 돌아본다.

▲밤비노의 저주 푼 엡스타인, 107년의 한도 푸나
엡스타인 사장은 이미 신화를 이뤘다. 2002년 겨울, 보스턴에서 리그 역사상 가장 젊은 단장이 됐고, 2004시즌 보스턴은 86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엡스타인은 데이비드 오티스, 케빈 밀라, 커트 실링 등을 영입했고, 이들은 우승의 주역이 됐다. 이후 보스턴은 2007시즌에도 정상에 올랐다. 통산 6번째 우승까지 86년이 걸렸지만, 7번째 우승은 3년 만에 찾아왔다.
그리고 엡스타인은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2011년 12월 시카고 컵스와 5년 계약을 맺고 컵스의 사장으로 부임했다. 1908년 이후, 100년이 넘게 월드시리즈 우승에 닿지 못한 컵스의 한을 풀기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2011시즌 컵스의 성적은 71승 91패로 리그 최하위였다. 야수진과 투수진 모두 30대 베테랑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는데,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야수진에서 스탈린 카스트로(당시 21세), 투수진에서 제프 사마자(당시 26세)가 두각을 드러냈을 뿐, 현재도 미래도 보이지 않는 팀이었다.
그러자 엡스타인 사장은 긴 호흡에 들어갔다. 대형 FA 영입 없이, 신인 스카우트를 통해 내실을 다지기로 했다. 계약기간이 5년인 만큼, 2016시즌까지 팀을 올려놓기로 결정했다. 엡스타인 사장 첫 해인 2012시즌 컵스는 61승 101패, 두 번째 해인 2013시즌에는 66승 96패를 했다. 2014시즌에도 컵스의 성적은 73승 89패로 형편없었다. 많은 이들이 엡스타인 사장의 능력에 물음표를 던지기 시작했지만, 엡스타인 사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계획한대로 팀의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채워나갔다.
기자는 2014년 2월 미국 애리조나 메사에 위치한 컵스 스프링 트레이닝을 취재했다. 당시 컵스에 있었던 임창용을 취재하는 게 주목적이었으나, 슈라즈 레만 컵스 부단장을 만나 구단의 중장기 계획도 들었다. 레만 부단장은 “모두가 우리의 리빌딩에 의문부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의 리빌딩은 계획한 그대로 잘 이뤄지고 있다. 1, 2년만 지나면, 강해진 컵스를 볼 수 있을 것이다”며 자신감을 전했다.
엡스타인 사장은 신인 드래프트에서 야수에 강하게 집착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컵스의 1라운드 지명자는 모두 야수다. 2012 드래프트에서 외야수 알버트 알모라를 지명한 것을 시작으로 2013 드래프트에선 내야수 크리스 브라이언트, 2014 드래프트에선 포수 카일 슈와버를 지명했다. 2015 드래프트 역시 컵스의 선택은 외야수 이안 햅이었다. 붕괴된 마운드를 재건할 젊은 에이스투수가 절실했으나, 엡스타인 사장은 무모하게 보일 정도로 야수만 수집했다. 대부분의 팀들이 ‘투수는 키워 쓰고, 야수는 사서 쓴다’는 원칙을 갖고 있으나, 엡스타인 사장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엡스타인 사장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2015시즌 컵스의 젊은 야수들은 함께 폭발했다. 엡스타인 사장이 컵스에 오자마자 트레이드로 데려온 1루수 앤서니 리조는 2년 연속 30홈런 이상을 기록했다. 크리스 브라이언트와 카일 슈와버는 빅리그 첫 해부터 맹활약을 펼쳤다. 2014시즌 트레이드 마감일에 사마자를 오클랜드에 보내고 영입한 애디슨 러셀은 팀의 새로운 유격수가 됐다. 이렇게 만 25세 이하 선수들이 공수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컵스는 현재보다 미래가 더 밝은 팀이 됐다.
무너졌던 마운드는 외부영입을 통해 높였다. 2013시즌 트레이드로 데려온 제이크 아리에타는 2014시즌 10승 투수로 도약하더니, 올 시즌에는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가 됐다. 지난겨울 FA 시장에선 좌완 에이스 존 레스터를 영입했다. 2014년 2월 레만 부단장은 “우리는 향후 FA 시장이 어떻게 펼쳐질 지를 주목하고 있다. 우리 젊은 야수들이 빅리그에서 두각을 드러낼 시점에서 FA 시장에는 정말 뛰어난 투수들이 많이 나온다. 선발진은 FA 영입을 통해 강하게 만들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올 겨울 FA 시장도 마찬가지다. 데이비드 프라이스, 잭 그레인키, 자니 쿠에토 등 에이스들이 쏟아져 나온다. 컵스 구단의 총 연봉은 1억2000만 달러 수준으로 리그 13위. 올해 월드시리즈 제패 여부를 떠나, 2016시즌 컵스의 선발진은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앨더슨, 절망의 메츠에 미래를 열다
엡스타인이 보스턴에서 젊은 단장으로서 새 바람을 일으켰다면, 앨더슨 단장은 이미 리그에서 인정 받은, 베테랑 단장이다. 1983년부터 오클랜드 단장을 역임했고, 1990년대 세이버 매트릭스 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머니볼’로 유명해진 빌리 빈 단장의 멘토였고, 1997년 10월 빈 단장을 후계자로 지목하며 오클랜드를 떠났다. 이후 앨더슨 단장은 메이저리그 사무국 부사장에 자리했고, 2005년부터 2009년까지는 샌디에이고의 단장을 맡았다. 그리고 2010년 10월, 최악의 위기와 마주했던 뉴욕 메츠와 5년 계약을 체결했다.
앨더슨 단장 부임 당시 메츠는 연료 없이 움직여야하는 대형 트럭 같았다. 메츠 구단주 프레드 윌폰 집안이 금융사기극의 공범으로 지목됐고, 수억 달러에 달하는 집단 소송을 당했다. 이는 고스란히 메츠 구단에 부담이 됐다.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돈을 썼던 메츠가 매년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한 것이다. 메츠는 2009년 선수단 연봉총액이 1억5000만 달러(당해 리그 전체 2위)였는데, 3년 후인 2012년에는 9400만 달러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메츠의 연봉총액은 약 8500만 달러로 리그 최하위권이었다.
대형 FA 영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앨더슨 단장은 유망주 육성에 전력을 다했다. 마이너리그 코칭스태프를 전면개편하고, 팀의 주축 선수들을 과감하게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았다. 앨더슨 단장의 첫 번째 움직임은 팜 디렉터로 폴 디포데스타를 영입한 것이다. 디포데스타는 영화 ‘머니볼’에서 빌리 빈의 참모 역할을 한 캐릭터로 묘사된 바 있다. 디포데스타가 메츠를 맡은 이후 메츠의 유망주들은 무섭게 성장했다.
앨더슨은 2011시즌 트레이드 마감일에 앞서 카를로스 벨트란을 샌프란시스코에 보내고, 샌프란시스코로부터 유망주 투수 잭 윌러를 얻었다. 그리고 2012년 12월에는 사이영상 수상자인 R.A 디키와 FA 계약을 체결한 뒤 토론토와 트레이드를 단행, 노아 신더가드와 트래비스 다노를 데려와 20대 배터리를 완성했다. 
앨더슨 단장 부임 후에도 메츠의 성적은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매년 유망주들이 두각을 드러냈고, 마이너리그 팀 성적은 최상위권에 자리했다. 무엇보다 매 시즌마다 새로운 에이스투수가 나타났다. 2013시즌 맷 하비, 2014시즌 제이콥 디그롬과 잭 윌러, 그리고 올 시즌에는 신더가드와 스티븐 매츠가 빅리그 콜업 후 잠재력을 뽐냈다. 결국 메츠는 올 시즌 막강한 젊은 선발진을 앞세워 지구우승을 차지했다. 
▲ NLCS, 리그 미래 책임질 투수와 타자의 대격돌
컵스와 메츠의 이번 챔피언십 시리즈는 앞으로 메이저리그를 책임질 타자들과 투수들의 맞대결이 된다. 컵스의 리조 브라이언트 슈와버는 메츠의 영건 4인방 하비 신더가드 디그롬 매츠와 마주한다. 야수 위주의 리빌딩을 단행한 컵스. 컵스와 반대로 투수를 중점으로 키운 메츠. 창과 방패의 대결에서 누가 웃을지 지켜볼 일이다. / drjose7@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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