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더스틴 니퍼트(34)와 NC 에릭 해커(32)의 희비가 가을에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정규시즌에서는 리그 최다승과 평균자책점 2위의 해커가 최고 외인 투수로 활약했지만, 가을에 들어와서는 니퍼트가 명불허전의 투구로 역시 최고임을 재확인하고 있다.
올해로 KBO 5년차 니퍼트는 가장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20경기 6승5패 평균자책점 5.10. 어깨와 허벅지 부상으로 두 번이나 엔트리에서 이탈하며 90이닝밖에 던지지 못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완벽하게 회복된 포스트시즌 3경기에서 23이닝 2실점으로 평균자책점이 0.78에 불과하다.
특히 NC와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 9이닝 114구 완봉승 이후 3일을 쉬고 나온 4차전에도 7이닝 86구 역투로 또 승리를 따냈다. 1차전 최고 153km, 2차전 최고 154km 강속구로 NC를 압도했다. 투수에게 최고의 무기는 제구되는 빠른 공이다. 올 가을야구에서 니퍼트가 그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두산 한용덕 투수코치는 "그동안 많이 쉬었기 때문에 힘이 넘친다"고 호투 비결을 요약했다. 정규시즌에서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충분한 휴식을 취했고, 구속과 구위 모두 압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후반기에 36이닝 투구로 비축해놓은 힘을 가을에 모두 쏟아 붓고 있다. 이제 시즌을 시작한 느낌이다.
반면 정규시즌에서 최고로 군림한 해커는 눈에 띄게 힘이 떨어진 모습. 1차전 4이닝 4실점에 이어 2차전도 5⅓이닝 3실점에 만족했다. 니퍼트와 두 차례 에이스 맞대결에서 모두 패했다. 정규시즌 최저 피안타율(.232)을 기록한 해커이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무려 3할4푼1리의 피안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해커는 4차전 최고 구속 148km를 던졌지만, 대부분 140km대 초반에 그치고 있다. 볼끝 움직임으로 먹고 사는 해커인데 압도하는 힘이 없어졌다. 정규시즌에서 리그 두 번째 많은 204이닝을 던진 해커는 쉼 없이 로테이션을 소화했다. 시기상 힘이 떨어질 때가 됐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 데이비드 프라이스(토론토) 자니 쿠에토(캔자시스티) 등 내로라하는 에이스들이 가을야구에 고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올 가을을 지배하고 있는 니퍼트 역시 지난해까지 포스트시즌에는 고전했다. 2012~2013년 포스트시즌 8경기 통산 1승1패 평균자책점 4.98으로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개인 최다 194이닝을 던진 2012년에는 준플레이오프 2경기 평균자책점 8.53으로 뭇매를 맞았다. 시즌 때 많은 공을 던진 특급투수들에게 가을야구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니퍼트와 해커의 올 가을야구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이유다. /waw@osen.co.kr
[사진] 잠실=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