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스폰서를 둘러 싼 ‘히어로즈 사태’의 논란이 점점 커지고 있다. 스폰서 업체의 정체성을 둘러싸고 여론이 일제히 반대의 목소리를 내 리그 전체가 시끄럽다. 하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이번 사태가 프로야구를 둘러싼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스포츠서울’은 지난 23일 “일본계 금융기업인 J트러스트와 히어로즈가 메인스폰서 계약을 추진 중이다”라고 단독보도했다. 이에 히어로즈 구단과 J트러스트 측은 모두 “확정은 아니나 협상을 하고 있는 것은 맞다”라고 시인했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히어로즈는 2010년부터 6시즌 동안 메인스폰서를 맡았던 타이어 업체 넥센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히어로즈의 요구를 넥센이 맞춰주지 못했다. 이후 새로운 스폰서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J트러스트와 접촉했고 현 시점에서는 계약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여론은 들끓고 있다. J트러스트라는 업체의 이미지와 특수성 때문이다. J트러스트는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 지역에 총 23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글로벌 금융기업이다. 자산만 5조 원이 넘는다. 실제 J트러스트는 이번 협상에서 그 어떤 기업보다 많은 후원 금액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100억 원 정도를 제시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일본계 기업이라는 점, 지금은 하고 있지 않지만 대부업 이미지가 강하다는 점에서 반발이 극심하다.

이에 “국내 프로스포츠를 선도하는 프로야구 구단의 메인스폰서로 들어오기에는 여러 모로 이미지가 좋지 않다”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KBO(한국야구위원회)와 다른 구단들도 여론 못지않게 반응이 썩 좋지는 않다. KBO 리그는 야구 외적으로는 국내를 대표할 만한 굴지 기업들의 집합체다. 이런 ‘로열패밀리’의 모임에 이미지가 좋지 않은 일본계 기업이 낀다는 것에 대한 반감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마땅한 제재 방안이 없다는 것이 고민이다.
J트러스트와 히어로즈가 이런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끝내 손을 잡을지는 미지수다. 어느 한 쪽이 발을 뺄 가능성도 있다. “당분간 숨 고르기에 들어가지 않겠는가”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한민국에서는 법보다 더 무서운 ‘국민 정서’를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문제를 모두 제하고 나머지를 보면 불편한 현실도 보인다. 더 늘어나지는 않고 있는 KBO 리그의 상품 가치, 어려운 경제 여건 등을 곱씹어봐야 한다는 냉정한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비판 여론을 충분히 예상했을 법한 히어로즈가 그럼에도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역시 돈이다. 히어로즈는 2013년 67억 원, 2014년 40억 원 가량의 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내년부터는 목동구장에 비해 운영비가 훨씬 더 많이 들어갈 고척스카이돔에 입주한다. 야구계는 “히어로즈의 운영비는 최소 30억 원 이상 더 늘어날 것이다. 가뜩이나 적자인데, 이를 만회할 만한 새로운 수익 창출원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히어로즈는 100억 원 이상의 메인스폰서가 절실하고, J트러스트의 제안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올해까지 스폰서를 맡았던 넥센의 연간 후원 금액은 50억 원 정도로 알려졌다. 50억 원 정도의 차이가 난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넥센은 J트러스트와 계약을 맺는다면 지난해 기준으로 단번에 흑자에 가까운 지표를 낼 수 있다. 모기업이 없어 매년이 생존과의 전쟁을 벌이는 히어로즈로서는 뿌리치기 어려운 달콤한 유혹이다.
어려운 국내 경제의 여건이 이번 ‘비극’을 만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히어로즈는 J트러스트 외에도 1~2개 국내 업체와 메인스폰서 계약 의사를 타진했다. 그러나 국내 업체들의 스폰서 금액은 넥센 타이어에 비해 획기적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적은 차이라면 이미지 손실 때문에라도 국내 기업과 손을 잡았겠지만 너무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히어로즈 사태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누구나 이 방향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똑 부러진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한 구단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문제가 없는 국내 기업이 J트러스트에 근접한 스폰서 금액을 지불하고 야구판에 뛰어드는 것이다. 다른 주체들이나 팬들이 차액을 보전해줄 수도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그럴 가능성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히어로즈가 J트러스트와의 계약을 강행할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사실상 히어로즈의 ‘대승적 결단’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다.
한편 이번 사태를 계기로 프로야구가 질적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프로야구는 대표적인 적자 산업이다. 홍보 효과, 사회 환원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도 있지만 성적이 나쁘고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지면 모기업의 이미지를 깎아 먹을 위험성도 공존한다”라면서 “야구 관계자들은 ‘프로야구는 국내 최고의 스포츠다. 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설 것’이라고 생각한다. 팬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가뜩이나 경제 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인수는커녕 메인스폰서에 거액을 제시할 국내 기업도 없다는 게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현실이다. ‘이미지 변신’이 절실하고, 실탄도 충분한 J트러스트가 이 빈 틈을 파고 드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실제 10구단 창단 당시 프로야구를 하겠다는 대기업은 kt가 유일했다. 그나마 굴지의 대기업이라는 kt 또한 모기업 상황 때문에 올해 적극적으로 지갑을 열지 못했다. 히어로즈 구단의 매각설이 꾸준히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도 과감한 베팅에 나선 ‘흑기사’ 또한 몇 년째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당장 KBO의 메인 스폰서 금액도 2000년대 초반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 33살이 됐지만 프로야구는 외부 지원에 기댄 채 아직도 걸음마가 진행 중인 것이다. 이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자생 여력을 마련하지 못하는 이상, 상황은 앞으로 더 어려워질 수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