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으로 인해 베스트 전력이 가동되지 않은 경우는 꽤 있었다. 하지만 대형 스캔들로 중심 투수 셋이나 빠져버린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21세기 최강팀 삼성 라이온즈가 도박 스캔들 직격타를 맞은 채 한국시리즈에 임한다.
삼성 구단은 25일 한국시리즈 엔트리를 발표했다. 공개된 엔트리에는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이 제외되어 있었다. 삼성 구단은 이미 지난 20일 긴급기자회견에서 “의혹을 받고 있는 선수들에 대해 한국시리즈에 출전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20일 이후 세 선수를 팀 훈련에서 제외, 삼성은 이들 없이 한국시리즈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이 삼성 마운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윤성환은 올 시즌 30경기 194이닝을 소화하며 17승 8패 평균자책점 3.76을 기록했다. 팀 최다승과 최다이닝을 찍은 토종에이스다. 안지만과 임창용은 불펜 필승조로 경기 후반 삼성의 승리보증 수표 역할을 해왔다. 셋업맨 안지만은 66경기 78⅓이닝 4승 3패 37홀드 평균자책점 3.33, 마무리투수 임창용은 50경기 54이닝 5승 2패 33세이브 평균자책점 2.83을 올렸다. 선발투수-셋업맨-마무리투수 조합인 만큼, 이들 셋만 마운드에 올려도 한 경기를 그냥 가져갈 수 있다.

그런데 셋 다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받고 있고, 이미 주위에 큰 피해를 안겼다. 통합 5연패를 위해 오랫동안 피땀 흘려온 동료들과 코칭스태프, 이들을 응원했던 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들 셋 모두 구단으로부터 엄청난 대우를 받는 고액연봉자다. 윤성환과 안지만은 지난겨울 각각 4년 총액 80억원과 65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임창용도 지난해 봄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삼성과 연봉 5억원에 플러스 옵션 계약을 맺었다. 셋은 이렇게 대형계약으로 번 돈을 불법 도박판에 뿌렸다는 의혹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프로스포츠는 팬들의 사랑 없이는 존재 가치가 없다. 아무리 KBO리그가 팀당 100억원 이상의 적자산업이라고 해도,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TV 중계를 지켜보는 팬들이 있기 때문에 리그가 유지되고 투자도 이뤄진다. 야구흥행이 꺾이지 않으니까 선수들도 그만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
최근 몇 년 FA 계약과 연봉 규모만 봐도 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선수 연봉은 하늘을 뚫고 치솟는 중이다. 불과 7, 8년 전만해도 한 해 300, 400억대 FA 시장이 열릴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야구 수준이 높아졌고, 팬들은 이에 아낌없는 환호를 보냈다. 선수 연봉규모가 거품인지 아닌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KBO리그가 80년대, 90년대보다 경쟁력을 갖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초유의 사건으로 인해 야구의 격이 떨어졌다. 가장 큰 축제를 앞두고 흥행과 품격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삼성과 두산 중 어느 팀이 우승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두산이 주축 투수들이 빠진 삼성을 꺾을 수도 있고, 삼성이 공백을 이겨내고 5연패를 차지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어느 쪽이 이기든, 우승의 의미 또한 퇴색된다는 점이다.
두산은 억울한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의도치 않게 100% 전력이 아닌 삼성을 상대한다. 2년 전 이루지 못한 기적에 재도전하는데, 마지막 승부를 겨루는 상대가 영 찜찜하다. 삼성이 도박파문에 휩싸인 선수들의 힘을 빌려 올해 정규시즌 우승은 물론, 지난 4년 동안 정상에 올랐음은 부정하기도 힘들다. 이번 한국시리즈에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이 없다고 해도, 이들 모두 정규시즌에선 맹활약을 펼쳤다. 세 투수가 있었기에 삼성은 정규시즌 1위, 한국시리즈 확정이라는 이점을 얻었다. 그리고 2015 한국시리즈는 반쪽짜리 잔치가 되고 말았다. / drjose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