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마무리투수 이현승은 올해 가장 믿을만한 불펜투수였다. 정규시즌 3승 1패 18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2.89를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이현승은 강력한 무기였다. 준 플레이오프 3경기에서 3이닝을 소화, 안타조차 허용하지 않으며 시리즈 MVP로 선정되더니 플레이오프에서는 3차전 2이닝 무실점, 5차전 3이닝 무실점으로 완벽투를 뽐내며 두산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혹사'라는 개념이 희박해진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짓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다소 무리가 돼도 선수는 던진다. 선발투수가 3일만 쉬고 나와도 이해한다. 그게 바로 포스트시즌이다. 여기서 무리한 운용이 이해되기 위한 조건이 있다. 선수 기량이 뒷받침될 때의 이야기다.
불펜이 불안한 두산에 이현승은 전가의 보도였다. 두산은 26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먼저 5점을 뽑으며 기세를 올렸지만, 삼성의 화력에 밀리면서 계속 추격을 당했다. 8-4로 앞선 가운데 7회말에 돌입했는데, 믿었던 불펜투수 함덕주가 야마이코 나바로에게 스리런 홈런을 맞고 1점 차까지 추격을 허용했다.

이후 함덕주가 최형우를 내야 뜬공으로 잡았지만 박석민에게 다시 볼넷을 내주자 두산 벤치는 움직였다. 이승엽 타석에 노경은을 투입한 것이다. 노경은은 이승엽을 중견수 뜬공으로 돌려세우고 2사 1루까지 만들었다. 그라고 타석에는 채태인, 볼카운트 1볼 1스트라이크에서 두산 벤치가 갑자기 움직였다. 잘 던지고 있던 노경은을 빼고 이현승을 투입한 것이다.
보통 타자와 승부가 들어가면 투수교체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투수가 명백하게 흔들리거나 부상이 아닌 다음에서야 말이다. 부상이 없는데 1볼 1스트라이크에서 투수를 바꿨다는 건 그만큼 두산 벤치가 이현승에 의지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믿음이 결국 패착이 됐다.
이현승은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채태인에게 중전안타를 맞고 2사 1,2루 위기를 맞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지영 타석에서 폭투까지 범해 안타 하나면 경기가 뒤집힐 상황까지 왔다. 이현승은 여기서 이지영으로부터 투수 앞 땅볼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여기서 1루 송구가 조금 빗나갔고, 1루수 오재일이 이걸 제대로 잡지 못하면서 경기가 뒤집히고 말았다.
두산은 이현승 조기투입으로 두 가지를 잃었다. 첫 번째는 경기를 내줬다. 이건 결과론이니 넘어갈 수 있다. 두 번째는 불펜 핵심인 이현승을 한국시리즈 1차전부터 너무 일찍 소모, 전체 시리즈에 영향을 줬다. 마지막으로 노경은까지 영향을 받게 됐다. 마운드에서 잘 던지고 있었음에도 벤치는 승부 중에 투수를 끌어 내렸다. 이현승의 조기투입이 이번 한국시리즈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cleanupp@osen.co.kr
[사진] 대구=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