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격될 줄 몰랐다."
'빙속 여제' 이상화(26)가 월드컵 대표 선발전서 규정 미숙으로 실격됐다. 하지만 추천제도에 의해 월드컵에 나갈 수 있을 전망이다. 이상화는 28일 오후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서 열린 제50회 전국 남녀 종목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여자 500m 1차 레이스서 38초52, 2차 레이스서 38초39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합계 76초91으로 출전 선수 13명 중 가장 좋은 기록을 냈다.
이번 대회는 2015-2016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1~6차 대회) 국가대표 선발전를 겸해 열렸다. 지난해 소치동계올림픽서 여자 500m 2연패 신화를 써낸 이상화는 고질적인 무릎 통증을 이겨낸 뒤 9개월 만에 공식 대회에 출전해 건재를 과시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겨냥해 지난 5월부터 캐나다에서 구슬땀을 흘린 이상화는 지난해 본인의 국내 대회 최고 기록(38초83)을 1, 2차 레이스서 모두 경신했다.
하지만 규정 미숙이 문제였다. 인코스에서 출발한 이상화는 2차 레이스 도중 오른팔에 채워져 있던 하얀색 암밴드(인코스와 아웃코스를 구분하는 완장)가 손목까지 흘러내리자 왼손으로 빼 빙판으로 던졌다.
이상화는 ISU 규정에 따라 실격 처리됐다. 이상화의 올 시즌 월드컵 500m 출전에 빨간불이 켜지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구제할 방법이 있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이런 경우를 대비해 보호규정을 마련해두었다.
김관규 대한빙상경기연맹 경기이사는 "ISU 규정에 레이스 도중 암밴드가 자연적으로 빠지면 실격이 아니지만 본인이 손으로 빼서 버렸을 경우 실격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제 대회서 메달을 따는 선수들이 정해져 있어 이런 경우를 대비해 보호규정을 만들어놨다. 경기위원회에서 사전에 공지해놓은 상태다. 대회가 모두 끝난 뒤 경기위원회의 추천에 따라 이상화가 주종목인 500m에 출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상화는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규정을 몰랐다는 그는 "경기가 끝난 뒤 실격이라는 걸 알았다. 암밴드가 이미 손등에 걸쳐 있었다. 속도가 올라가면 빠질까봐 직접 뺐다"면서 "실격이 될 줄 몰랐다. 월드컵에 출전할 수 없다면 나로서도 할 수 없다. 규정을 몰랐지만 정해진 룰을 따라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이상화는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지난해보다 굉장히 좋았다. 빙질에 비해 정말 열심히 탔다. 무릎은 괜찮다. 통증도 없다. 캐나다서도 열심히 훈련했다. 늘 하던 훈련을 했다. 한국을 떠나 타지에서 다른 사람들과 운동하는 게 재밌었다"고 말했다.
이어 "100m 첫 구간을 보완했다. 지난해는 훈련량이 부족해서 처음 200m를 빠져나와서 마지막 200m를 못 들어왔다.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훈련했다. 첫 출발이 좋은 것 같아 다행이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올림픽 2연패 뒤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슬럼프에 빠졌던 이상화는 "올림픽 전에 500m서 계속 우승을 해와 동기부여가 없었다. 자신과의 싸움이었는데 지난해는 나에게 졌다. 올림픽 이후라 그런지 조금 힘들었다"면서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도 있는 법이다. 계속 1등만 하다 보니 나름대로 부담이 생겼다. 잘하든 못하든 내 기량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상화는 "캐나다로 전지훈련을 떠난 이유는 다가오는 올림픽을 위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소속팀 문제는 올 해가 이미 다 지나갔기 때문에 1, 2차 월드컵이 끝난 뒤 정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이상화가 실격되면서 78초97을 기록한 장미가 500m 정상에 올랐다. 김민선(79초70)과 김현영(79초72)이 뒤를 이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선발된 남자 12명과 여자 10명 등 총 22명이 이번 시즌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시리즈에 출전한다. 월드컵 시리즈는 11월 13~15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리는 1차 대회를 시작으로 내년 3월 11~13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에서 펼쳐지는 6차 파이널 대회까지 4개월여 동안 이어진다./dolyng@osen.co.kr
[사진] 태릉=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