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뛰는 김동엽, SK 거포 유망주 기대만발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10.29 14: 23

일사천리로 신인 선수들을 지명하던 SK가 이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임’을 불렀다. 1·2라운드와 같이 상위 지명 순번이 아닌, 거의 끝자락인 9라운드 지명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동안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던 SK 관계자는 장고 끝에 이름을 호명했다. “김동엽을 지명하겠습니다”. 지난 8월 24일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2016년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신인드래프트 현장에서 많은 이들의 한숨이 나오는 순간, 정작 당사자인 김동엽(25, SK)은 그 현장에 없었다. 김동엽은 당시 상황에 대해 “손목 쪽이 조금 좋지 않아 다른 부위의 보강 운동을 하고 있었다”면서 “사실 지명이 될 줄도 몰랐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간 보여준 것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설사 지명되지 않더라도 육성선수 입단을 통해 프로에 도전해보겠다고 마음을 비운 상태였다.
하지만 그 후로 3달 뒤. 김동엽은 SK 퓨처스팀(2군) 코칭스태프가 기대를 거는 거포 유망주로 성장해 있었다. 강화 SK퓨처스파크에 입소한 김동엽은 최근 SK의 마무리훈련에 참가해 땀을 흘리고 있다. 겉에서 보는 체구는 또래 선수들은 물론 선배들까지 압도할 정도의 거구다. 프로필을 “187㎝에 100㎏ 정도”라고 수줍게 소개한 김동엽은 연신 방망이를 휘두르며 경쾌한 파열음을 내고 있었다. 모든 관계자들의 시선은 김동엽의 연습 배팅에 집중되어 있었다.

목소리가 밝은 김동엽이었지만 걸어온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김동엽은 고교 시절 장타력과 주력을 갖춘 유망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프로에 가지 않았다. 곧바로 메이저리그(MLB) 도전을 선택해 시카고 컵스에 입단했다. 그러나 역시 미국 땅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입단하자마자 받은 어깨 수술이 결정타였다. 김동엽은 “사실 내가 적응을 못했다. 가자마자 수술을 했고 그 때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고 담담하게 회상한다. 주위 여건보다는 모든 것이 자기 탓이었다고 돌리는 김동엽이다.
2년 동안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한 김동엽이었다. 그러나 야구에 대한 열망은 강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며 2년 뒤를 꿈꿨다. 남는 시간을 활용해 운동도 열심히 했다. 사실 김동엽은 어린 시절 지금처럼 거구가 아니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평범한 체구였고 고등학교 때 키가 조금 더 컸을 뿐 살은 찌지 않았다고 말하는 김동엽이다. 하지만 공익근무요원 시절 충실히 웨이트를 한 덕에 지금의 당당한 체구를 갖출 수 있었다. 기술은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체격은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
지명 이후로는 강화도에 틀어 박혀 야구에만 전념하고 있다. “마이너리그에서는 단체 훈련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단체 훈련이 가장 하고 싶었다”라고 껄껄 웃는 김동엽은 강화도에서 어린 후배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김동엽은 “적응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후배들이 잘 해줘서 친하게 지내는 선수들도 생겼다”라고 미소 지었다. 미국 진출 후 느껴보지 못했던 즐거움이다.
여건이 안정되자 방망이도 날카롭게 돌아간다. 김동엽의 훈련을 지켜보던 박경완 SK 1군 배터리 코치는 “맞으면 공이 탁구공처럼 날아간다”라고 흥미로운 시선을 유지했다. 김경기 SK 퓨처스팀 감독도 “정확도는 좀 더 개선해야겠지만 체구 자체는 당당하다”라며 역시 키워볼 만한 인재라는 평가를 내렸다. 현역 정상급 타자 출신이었던 두 지도자도 김동엽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도자들의 평가처럼 “장타력은 자신이 있다”라고 말하는 김동엽이다. 거구의 체구라 뛰는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어렸을 때부터 단거리는 잘 뛰었던 김동엽은 “뛰는 것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싱글A에서 90마일 중반의 공을 뿌리는 선수들이 많은 만큼 직구 대처도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는 평가다. 변화구 공략이 관건인데 김동엽은 “더 열심히 해서 구단이 원하는 기대치에 부응하겠다”라고 각오를 다진다.
굽이굽이 돌아온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늦지는 않았다. 김동엽은 동기를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일본에서 1년 학교를 다니는 바람에 1년 유급을 다. 고원준(롯데)이 친구고 김용주(한화)가 동기”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제 막 군에서 제대한 선수들이다. 프로 초기 공백에 대한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다시 같은 출발선에 선 것은 분명하다. 김동엽은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늦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면서 “이제는 결과로 보여드리겠다”고 힘줘 말했다. SK의 우타거포 갈증을 씻어버릴 새 유망주가 힘찬 시동을 걸었다. /skullboy@osen.co.kr
[사진] 컵스 시절 김동엽의 경기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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