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한국시리즈 선전은 대단한 구석이 있다. 남들처럼 외국인 선수 세 명을 모두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말의 기대를 건 내야수 데이빈슨 로메로(29, 두산)의 부진도 길어지고 있다. 아직 안타를 신고하지 못하고 있는 로메로의 침묵 속에 사실상 외국인 1명으로 시리즈를 치르고 있다는 푸념도 가능해졌다.
로메로는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 선발 8번 1루수로 출전했지만 안타를 신고하지 못했다. 기대했던 한국시리즈 첫 안타는 오늘도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 기대를 걸었던 수비에서도 두 차례 미숙한 장면을 연출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공·수 모두에서 벤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경기였다. 오히려 팀의 힘을 빼는 장면도 있었다. 팀이 이겨서 망정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역적이 될 뻔했다.
방망이에는 힘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힘에 의존하는 피가로를 상대로 한다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반전은 없었다. 2회 첫 타석에서 2루 땅볼에 그치며 부진한 출발을 보인 로메로는 5회 선두타자로 나선 두 번째 타석에서도 역시 2루 땅볼에 머물렀다. 의욕을 가지는 모습이었지만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았다. 로메로는 6회 세 번째 타석에서는 차우찬에게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결국 로메로는 8회 수비와 함께 오재일로 교체됐다. 이로써 로메로는 한국시리즈 10번의 타석에서 단 하나의 안타도 때려내지 못하는 부진을 이어갔다. 볼넷이나 몸에 맞는 공도 없어 출루율 또한 0이다. 제 아무리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고 해도 외국인 타자임을 고려하면 맥이 풀리는 수치임은 분명하다. 두산 벤치의 인내심도 그리 길지 않을 공산이 커졌다.
수비도 아주 깔끔하지는 않았다. 사실 로메로가 주전으로 출전할 수 있었던 것은 1차전에서 오재일이 포구 실책을 저지른 것이 하나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2차전에서 4타수 무안타, 3차전에서 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3경기 연속 주전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러나 이날 교체에서 보듯 로메로는 수비에서도 불안했다.
2-0으로 앞선 2회 실점 과정에서도 로메로의 보이지 않는 실책이 있었다. 선두 박석민의 타구가 3루수 방면으로 강하게 나갔다. 허경민이 잘 잡기는 했지만 송구가 다소 치우쳤다. 그리고 로메로 또한 이를 막아내지 못하며 박석민이 실책으로 2루까지 진루했다. 허경민의 송구가 썩 좋지 않아 까다롭기는 했지만, 수비에서 기대를 걸었던 로메로여서 실책이 더 도드라졌다.
7회에는 파울플라이를 제대로 잡지 못해 노경은의 아쉬움을 샀다. 물론 이 또한 머리 뒤로 넘어가는 뜬공이라 잡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쫓아가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역시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번 모두 로메로의 실책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로메로에 대한 두산 벤치의 기록지에는 점수를 깎는 ‘실책’으로 기록될 법했다. 역설적으로 두산 토종 선수들의 대단함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skullboy@osen.co.kr
[사진] 잠실=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