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이종운 전 감독이 2015시즌 처음 감독으로 부임하고 나서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 감독을 찾아갔을 때 이야기다. 이 전 감독이 선배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감독이 될 수 있냐"고 조언 한 마디를 부탁했다. 그러자 류 감독은 "감독은 앉은뱅이가 돼야 잘 하는 자리다. 선수가 하는 게 야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는 류 감독 야구관을 보여주는 일화다. '야구는 선수가 한다', '감독은 선수가 야구를 잘 할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한 역할'이라는 게 류 감독의 생각이다. 이러한 믿음의 야구는 2011년 유행했던 '나믿가믿'(나는 믿을거야, 가코 믿을거야)라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도 류 감독은 믿음의 야구를 하고 있다. 4번 타자 최형우가 좋지 않았음에도 1차전부터 4차전까지 타순 변경조차 하지 않았다.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 두산 베어스전에도 최형우는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따라갈 수 있는 찬스였던 6회 무사 1,2루에서는 인필드플라이로 허무하게 물러났다.

그럼에도 류 감독은 "시즌 내내 4번 타자였던 최형우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는가. 내일(31일)도 최형우가 4번으로 나간다"고 선언했다. 류 감독이 최형우에게 무한신뢰를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류 감독 특유의 성향이다. 최형우는 올해 144경기 전경기에 4번 타자로 출전해 타율 3할1푼8리 33홈런 123타점으로 정규시즌 1위를 이끌었다. 시즌 막판에는 다소 부진했지만, 홈런과 타점 모두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류 감독은 2차전 이후 "최형우가 쳐야 우리 팀도 이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벼랑에 몰렸지만, 올 시즌 내내 믿었던 선수에게서 믿음을 거둘 수 없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다. 만약 최형우를 4번 자리에서 뺀다고 해도 마땅히 들어갈 선수가 없다. 삼성의 타격부진은 최형우만의 문제가 아니다. 4번 타자를 칠 만한 야마이코 나바로(15타수 3안타 타율 .200), 박석민(14타수 3안타 타율 .214) 모두 한국시리즈 들어서 컨디션이 좋지 않다. 최형우의 한국시리즈 성적은 17타수 2안타 타율 1할1푼8리다.
대안이라면 이승엽이 있다. 이승엽은 3차전 선발에서 빠지기도 했지만, 11타수 4안타 타율 3할6푼4리로 삼성 타자들 중 컨디션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이미 류 감독이 '최형우 4번'을 선언한 이상 만약 대구로 내려간다 해도 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결국 최형우가 지금의 부담감을 이겨내야 한다. 그래야 삼성도 살아난다. 문제는 삼성에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남은 3경기를 모두 잡아야만 역전우승이 가능하다. 그래서 더욱 삼성은 최형우의 부활이 절실하다. 4번 타자의 부활 없이는 기적같은 역전우승도 가능성이 희박하다. /cleanupp@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