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했었던 삼성이 허무하게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1패만 더 하면 전무후무한 목표였던 통합 5연패가 좌절된다. 그러나 아직 삼성에는 기회가 남아있다. 바로 2년 전, 이런 어려운 조건을 뒤집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 당시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역시 ‘변화’다.
삼성은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3-4로 역전패했다. 두 번째 투수 차우찬이 3⅓이닝 무실점 역투를 펼치며 끝까지 버텼지만 9회 1사 만루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등 타선이 결정적인 순간 침묵한 끝에 패배를 맛봤다. 1차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으로 여전한 강인함을 과시했던 삼성은 두산의 기세에 밀려 내리 세 판을 졌다. 이제 말 그대로 벼랑 끝에 몰렸다.
시리즈 시작 전부터 주축 투수 3명의 도박 스캔들에 휘청였던 삼성은 결국 그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투수들의 교체 타이밍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어 강점인 마운드 전력에 구멍이 났다. 여기에 믿었던 타선은 침묵이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당장 2013년 한국시리즈 당시에도 두산에 1승3패로 밀렸지만 5~7차전을 내리 잡으며 짜릿한 역전 우승을 한 기억이 있다. 삼성으로서는 당시를 돌아보며 전략을 다듬을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1승3패가 되는 과정은 올해와 조금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당시와 지금은 흡사한 구석이 많다. 당시도 두산은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와 기세를 탄 상황이었다. 삼성은 4차전까지 타선이 침묵했다는 점 또한 올해와 비슷하다. 당시 삼성의 첫 4경기 팀 타율은 1할7푼5리에 불과했다. 예상치 못한 난조였다. 그러나 삼성은 5차전에 시도한 변화가 적중하며 분위기를 살렸고 두산 벤치의 소극적인 면을 공략해 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삼성은 2013년 5차전 당시 타순에 대폭적인 변화를 줬다. 배영섭이 후보로 내려가고 정형식이 리드오프로, 그리고 여러 선수들이 들락거렸던 2번 타순에 베테랑 박한이가 등장했다. 부진했던 이승엽을 6번에서 5번으로, 그리고 박석민을 3번에서 6번으로 내린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변화였다. 공교롭게도 삼성은 5차전에서 타순 변화가 즉각적인 효력을 보며 승리를 거뒀고 그 기세를 몰아 6·7차전도 이겼다. 터지지 않았던 홈런포가 적시에 불을 뿜으며 두산 마운드를 괴롭혔다.
물론 현재 상황에서 대폭적인 변화를 주기는 힘들다. 구자욱을 선발로 출전시키고 이승엽과 채태인을 한 차례씩 빼는 등 소폭의 변화도 시도해봤다. 류중일 감독은 기본적으로는 선수의 역량을 신뢰하는 지도자다. 그러나 벼랑 끝에 몰린 이 시점에서는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들을 가장 중요한 길목에 배치해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한 번만 분위기를 바꿔놓으면 삼성 타선은 폭발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잠재력이 있기에 더 그렇다.
당시 마운드 운영도 기민했다. 5차전부터는 내일이 없는 총력전, 그리고 물량공세가 이어졌다. 절정은 6차전이었다. 선발 릭 밴덴헐크가 이두근 통증으로 1이닝만 소화하고 내려가는 위기 속에서 그 뒤로 8명의 투수를 대거 투입하는 총력전으로 타선이 터질 시간을 벌어줬다. 당시 삼성은 자꾸 7차전 승부를 대비하려는 듯한 두산 마운드보다 더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투수 교체 타이밍에서 완승을 거뒀다. 류중일 감독의 승부수가 통했고 이는 류중일 감독을 향한 의구심을 완전히 지워내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당시 삼성은 배영수 차우찬 심창민 권혁 안지만 오승환 등 불펜에서 뛸 수 있는 자원들이 차고 넘쳤다. 주축 투수 3명이 빠진 지금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정규시즌 성적이 조금 떨어지는 선수라도 어떤 시점에, 어떤 선수를 상대로 쓰느냐에 따라 위력은 달라질 수 있다. 삼성은 1~4차전에서 뒷문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투수교체를 빨리 가져가지 못했다. 5차전부터는 내일이 없다. 삼성의 저력이 벼랑 끝에서 발휘될 수 있을지는, 류중일 감독이 선택할 ‘변화’라는 매개체에 달렸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