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실패' 류중일, 쓴약도 보약이다
OSEN 손찬익 기자
발행 2015.10.31 17: 32

삼성 라이온즈의 통합 우승 행진이 '4'에서 멈췄다. 삼성은 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5차전서 13-2로 패했다. 삼성은 1차전 승리 후 4연패를 당하며 사상 첫 통합 5연패 달성이 좌절됐다.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거머 쥐고도 정상 등극에 실패한 삼성. 준우승의 아쉬움이 큰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쓴약도 보약'이라는 표현처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도 존재한다.
류중일 감독은 2011년 삼성 지휘봉을 잡은 뒤 줄곧 1등만 해왔다. 2011년 국내 감독 가운데 최초로 정규시즌-한국시리즈-아시아 시리즈 등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기도 했다. 프로야구 감독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해군 제독과 더불어 남성이 선망하는 3대 직업으로 꼽힌다. 그 가운데 전장의 장수와 비교되는 막강한 권한은 가장 돋보인다. 녹색 그라운드 안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만큼 성적에 대한 심적 압박감도 심하다.
2011년부터 1등만 해왔으니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도 엄청났다. 경기에서 패할 경우 소맥 한 잔 하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괴로워 했고 연패에 빠질때면 혼자서 벽을 보고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부임 첫해와 비교했을때 얼굴의 주름도 훨씬 많아졌다. 시즌을 앞두고 "이번에도 우승할 것 같다"는 주변 사람들의 덕담 조차 류중일 감독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류중일 감독은 두산과의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다들 정규 시즌 1위하면 당연히 한국시리즈도 우승한다고 생각하는데 혹시나 지면 어쩌나. 이긴다는 보장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한숨을 내뱉았다. 아쉽게도 통합 5연패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이제 시즌이 끝났으니 어깨 위의 무거운 짐을 내려놔도 될 것 같다.
 
물론 류중일 감독도 변해야 할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류중일 감독은 선수를 한 번 믿으면 끝까지 믿는다. 때로는 비난의 화살을 한 몸에 받기도 한다. 하지만 류중일 감독은 흔들리지 않는다. 언젠가는 제 몫을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지금껏 류중일 감독의 믿음을 져버린 경우는 없었다.
"못하는 선수가 갑자기 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경륜이 있는 선수는 언젠가는 올라오게 돼 있다. 경륜이 풍부한 선수가 지금 당장 부진하다고 경륜이 없는 선수를 투입하는 건 모험이다. 그렇게 해서는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는 그 믿음이 과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형우의 4번 기용이 대표적인 사례. 류중일 감독은 시리즈 내내 부진의 늪에 허덕였던 최형우를 향해 "우리 팀의 4번 타자는 최형우"라고 한결같은 신뢰를 보냈다. 결과는 참담했다.
물론 누군가를 믿는다는 게 참 좋은 일이지만 그게 능사만은 아니다. 때로는 자극 요법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일부 선수들은 "우리 감독님은 쓰는 선수들만 쓴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 신뢰의 수위를 조절하는 건 어떨까. 사령탑 부임 후 처음으로 시련을 맛본 류중일 감독. 이번 기회를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계기로 여겨야 할 것이다. /wha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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