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강타선이 힘을 못 썼다. 투수들의 힘도 있었지만 삼성 타자들의 빈틈을 파고 든 포수 양의지(28)의 리드도 대단히 빼어났다. 부상 투혼을 발휘한 양의지가 한국시리즈 우승 포수의 명예를 안으며 이제는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양의지는 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 선발 포수로 출전, 투수들과 함께 삼성 타자들의 약점을 찌르며 결국 팀의 13-2 대승에 힘을 보탰다. 이로써 두산은 1차전 패배 이후 내리 4연승, 2001년 이후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양의지 또한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팀에나, 개인에게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날도 양의지의 리드는 빛났다. 이날 두산 선발은 1차전에서 6이닝 4실점을 기록했던 유희관이었다. 그럭저럭 버텼지만 피안타가 많아 깔끔한 피칭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여기에 시즌 막판부터 구위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이날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유희관이 달라진 투수가 되며 6회까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양의지의 비중이 컸다. 1차전과는 다른 볼 배합, 그리고 유희관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볼 배합으로 신중하게 삼성 타자들을 상대했다.

급해진 삼성 타자들은 이런 양의지의 노련한 볼 배합과 힘을 얻고 한층 살아난 유희관의 제구력에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리고 이런 양상은 한국시리즈 내내 계속됐다. 삼성은 시즌 팀 타율이 3할에 이르는 리그 최고의 공격팀이었지만 1차전을 제외하고 2차전부터는 빈공에 시달렸다. 2차전부터 4차전까지 총 5점을 뽑는 데 그쳤고 5차전에서도 힘을 쓰지 못했다.
부상 투혼이라 더 값졌다. 양의지는 NC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당시 파울 타구에 발가락을 맞아 미세한 실금이 간 상황이다. 어찌 치료할 방법이 없고, 자연치료가 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극심한 상황. 그러나 양의지는 한 경기만을 거르고 나머지 경기에 모두 나서는 투혼을 발휘했다. 진통제를 먹으면서도 두산의 안방을 흔들림없이 지키며 마지막 순간 환하게 웃었다.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에서는 쏠쏠한 방망이 실력까지 과시하며 공격에서도 힘을 보탰다.
포스트시즌 들어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였던 더스틴 니퍼트는 시리즈 내내 양의지의 볼 배합에 대해 칭찬했다. 공격적인 리드로 자신의 장점을 살려줬다는 고마움이었다. 니퍼트는 플레이오프 1차전 완봉승 이후 “5년간 함께해서 그런지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생각을 할 때는 양의지의 생각이 맞다고 보고 따라간다”라고 절대적인 믿음을 드러냈다. 김인식 야구 대표팀 감독도 “양의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크다”라며 합류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skullboy@osen.co.kr
[사진] 잠실=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